사영권 행정실장님의 이임에 부쳐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458 | 작성일 : 2010년 7월 4일
사영권 행정실정의 퇴임에 부쳐
하루의 시간은 길게 느껴지나, 지난 세월은 ‘찰라’라는 느낌이다. 이제 사영권 바오로 실장님과 석별의 시간이다. 실장님과 만난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석별이라니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가 무일푼으로 대안학교인 양업고를 설립한다며 뛰어든 탓에 실장님과 인연이 되어 15년을 함께 지냈다. 하드웨어의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준비되도 어설픈데, 무일푼으로 계획을 말하고 실무를 맡겼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설립의지가 좋아 교육감은 학교설립 추진의지가 분명했지만, 실무를 책임질 교육청관계자는 설립실무자인 행정실장에게 반갑게 맞이할 리가 없다. 법조문을 펼쳐 보이며 “아무것도 없는 빈 털털이가 무슨 학교를 하냐?”고 윽박지르고, 자기들끼리 빈정거리면서 학교의 설립을 어렵게 했다. 폐교학교의 방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의 설득과 좌절, 팽팽한 기 싸움, 그래도 이런 어려움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행정실장님도 나도 무식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두를 다 이루고 이임을 하셨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을 경험한 실장님은 아마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학교설립을 위해 날마다 교육청을 드나드는 행정실장님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나는 저녁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 온 실장님의 입을 바러보는 것이 일과였다. "오늘 어떻게 진전 되었냐?"고 물으면 행정실장님은 “아이고” 하며 한숨 한번 내쉬고는 그래도 후반부에는 “잘 되겠지요.” 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나는 또 행정실장에게 지시한다. “오늘도 또 가보시오.”라고 말이다. 교육청의 답이 일관되게 뻔할 텐데도 행정실장님은 묵주를 손에 들고 또 도교육청을 향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신부님, 가 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라며 포기할 텐데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내색한 번 하지 않으시고 교육청을 향해 떠나고 또 돌아오는 것이었다. 매번 교육청에서 돌아 온 실장에게 기대감을 갖고 물어보면 분명 교육청의 반응과 주변상황이 절망적이었을 텐데도, 부정적인 마음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내, 한 가닥 작은 빛이 보입니다.” 라며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해 주곤 하셨다. 복음서에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예하의 병사가 병이 걸려 예수님께 청하러 온 백인대장이 생각났다.
만남의 시작이 1996년 8월이고, 1998년 1월 21일에 ‘특성화고등학교’라는 학교 설립의 인가 공문으로 통보를 받는 날은 얼마나 기뻤겠는가. 여유 없는 설립의 시작, 학생들과 겪는 어려움, 6년 동안의 교사동 신축과 증축, 교육청을 수없이 드나들며 이룬 공과는 헤아릴 수가 없다. 이렇게 바삐 산 일정 때문에 실장님과 다소곳이 앉아 식사도 한 번 못했고, 고맙다는 거치레 인사도 제대로 한번 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 동안 행정실장님이 학교 설립을 위해 피땀을 흘렸는가는 필설로 다 담을 수가 없다. 1998년 3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행정실장에 부임을 했고 꼭 13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45세의 검은 머리는 학교설립과 운영의 어려움으로 반백이 되셨고, 이제 고통 속에 피어난 교육의 부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아름다운 석별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학교 종합감사’가 있었다. 실장님이 떠나기 며칠 전의 일이다. 6월 21일부터 25일까지 3년 동안의 서류 일체를 점검 받았다. 깨끗하게 감사로 마감했고 후임자와 완벽한 인수인계를 하시고 학교를 이임하는 날까지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공무원 같으면 위로 휴가도 일 년간 있을 법한데도 떠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시며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
학교설립에 되지도 않을 일을 힘들게 실장님에게 맡겨 놓고는 그 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를 수없이 기다리며 희망이 되었던 실장님의 이야기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과 기대, 그리고 성모님에게서 어떤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조림의 연속 속에 양업이 잉태되고 순산을 하고, 어엿한 청년의 삶을 살도록 힘껏 도와주셨다. 성질 나쁜 내가 행정실장님을 많이도 야단쳤는데 늘 신앙인으로 사제를 존경했으며 그 마음을 삭히시느라 성당에서의 수많은 날을 성체조배와 묵주의 기도로 보내셨다. 퇴직을 앞두고 일 년 전부터 양업을 위해 묵주의 기도를 하셨다는 실장님의 고백을 듣자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앙인 사영권 바오로 행정실장님, 성실의 모범을 보여주신 실장님, 15년을 살며 한계를 맞이할 때마다 힘이되어 주시고 기도해주시던 실장님이 계셨기에 양업이 오늘처럼 우뚝 서 있다. 퇴직을 하고도 고법에 출두하여 학교를 걱정하는 마음과 기도는 좋은 결실을 안겨주리라 희망해 본다. 그늘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실장님 노고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후히 갚아 주실 것이다. 따스한 실장님의 사랑은 오래도록 학생들의 마음 안에 자라나 더욱 빛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실장님!
하루의 시간은 길게 느껴지나, 지난 세월은 ‘찰라’라는 느낌이다. 이제 사영권 바오로 실장님과 석별의 시간이다. 실장님과 만난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석별이라니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가 무일푼으로 대안학교인 양업고를 설립한다며 뛰어든 탓에 실장님과 인연이 되어 15년을 함께 지냈다. 하드웨어의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준비되도 어설픈데, 무일푼으로 계획을 말하고 실무를 맡겼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설립의지가 좋아 교육감은 학교설립 추진의지가 분명했지만, 실무를 책임질 교육청관계자는 설립실무자인 행정실장에게 반갑게 맞이할 리가 없다. 법조문을 펼쳐 보이며 “아무것도 없는 빈 털털이가 무슨 학교를 하냐?”고 윽박지르고, 자기들끼리 빈정거리면서 학교의 설립을 어렵게 했다. 폐교학교의 방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의 설득과 좌절, 팽팽한 기 싸움, 그래도 이런 어려움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행정실장님도 나도 무식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두를 다 이루고 이임을 하셨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을 경험한 실장님은 아마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학교설립을 위해 날마다 교육청을 드나드는 행정실장님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나는 저녁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 온 실장님의 입을 바러보는 것이 일과였다. "오늘 어떻게 진전 되었냐?"고 물으면 행정실장님은 “아이고” 하며 한숨 한번 내쉬고는 그래도 후반부에는 “잘 되겠지요.” 하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나는 또 행정실장에게 지시한다. “오늘도 또 가보시오.”라고 말이다. 교육청의 답이 일관되게 뻔할 텐데도 행정실장님은 묵주를 손에 들고 또 도교육청을 향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신부님, 가 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라며 포기할 텐데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내색한 번 하지 않으시고 교육청을 향해 떠나고 또 돌아오는 것이었다. 매번 교육청에서 돌아 온 실장에게 기대감을 갖고 물어보면 분명 교육청의 반응과 주변상황이 절망적이었을 텐데도, 부정적인 마음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내, 한 가닥 작은 빛이 보입니다.” 라며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해 주곤 하셨다. 복음서에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예하의 병사가 병이 걸려 예수님께 청하러 온 백인대장이 생각났다.
만남의 시작이 1996년 8월이고, 1998년 1월 21일에 ‘특성화고등학교’라는 학교 설립의 인가 공문으로 통보를 받는 날은 얼마나 기뻤겠는가. 여유 없는 설립의 시작, 학생들과 겪는 어려움, 6년 동안의 교사동 신축과 증축, 교육청을 수없이 드나들며 이룬 공과는 헤아릴 수가 없다. 이렇게 바삐 산 일정 때문에 실장님과 다소곳이 앉아 식사도 한 번 못했고, 고맙다는 거치레 인사도 제대로 한번 할 수가 없었다. 긴 시간 동안 행정실장님이 학교 설립을 위해 피땀을 흘렸는가는 필설로 다 담을 수가 없다. 1998년 3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행정실장에 부임을 했고 꼭 13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45세의 검은 머리는 학교설립과 운영의 어려움으로 반백이 되셨고, 이제 고통 속에 피어난 교육의 부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아름다운 석별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학교 종합감사’가 있었다. 실장님이 떠나기 며칠 전의 일이다. 6월 21일부터 25일까지 3년 동안의 서류 일체를 점검 받았다. 깨끗하게 감사로 마감했고 후임자와 완벽한 인수인계를 하시고 학교를 이임하는 날까지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공무원 같으면 위로 휴가도 일 년간 있을 법한데도 떠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시며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
학교설립에 되지도 않을 일을 힘들게 실장님에게 맡겨 놓고는 그 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를 수없이 기다리며 희망이 되었던 실장님의 이야기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과 기대, 그리고 성모님에게서 어떤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조림의 연속 속에 양업이 잉태되고 순산을 하고, 어엿한 청년의 삶을 살도록 힘껏 도와주셨다. 성질 나쁜 내가 행정실장님을 많이도 야단쳤는데 늘 신앙인으로 사제를 존경했으며 그 마음을 삭히시느라 성당에서의 수많은 날을 성체조배와 묵주의 기도로 보내셨다. 퇴직을 앞두고 일 년 전부터 양업을 위해 묵주의 기도를 하셨다는 실장님의 고백을 듣자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신앙인 사영권 바오로 행정실장님, 성실의 모범을 보여주신 실장님, 15년을 살며 한계를 맞이할 때마다 힘이되어 주시고 기도해주시던 실장님이 계셨기에 양업이 오늘처럼 우뚝 서 있다. 퇴직을 하고도 고법에 출두하여 학교를 걱정하는 마음과 기도는 좋은 결실을 안겨주리라 희망해 본다. 그늘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실장님 노고는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후히 갚아 주실 것이다. 따스한 실장님의 사랑은 오래도록 학생들의 마음 안에 자라나 더욱 빛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실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