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보양식 준비했습니다. 놀러 오세요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899 | 작성일 : 2010년 7월 22일
신부님, 보양식을 준비했습니다. 놀러오세요.
아시아권에서 암 발생률이 최고라는 대한민국, 그래서 국민들 누구도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 소식에 가정이 공포에 떨고 자신은 독백처럼 생을 원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제법 지나면 현실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모두를 맡기며 희망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생명임을 알게 되는 때가 이 순간이 아닐까.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투병이 겁나고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 가난한 암 말기 환우들이 생명이 되도록 희망하는 곳이 있다. 청원군 내수읍 원통리 ‘성모 꽃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서 환우들은 편안한 투병생활은 물론 하느님을 만나고 알아가며 영원한 생명을 꿈꾸고 희망한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전해주신 ‘부활의 기쁜 소식’이 어떤 것인가를 환우들에게 알게 하고, 환우들은 자기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나는 이 일을 하는 박창환 가밀로 신부님을 존경한다. 사제로 수품 된지 18년째를 맞이하는 이 신부님은, 공들여서 암 말기 환우 분들을 위한 쾌적한 시설, 아름다운 ‘성모꽃마을’을 조성하고, 10년 동안 환우들과 이곳에서 지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생명이 되어 세상을 떠난 분들이 무려 2천3백 명을 넘었다고 한다.
내 친구도 이곳에서 지낸다. 그는 말기 환자이면서도 늘 행복해 한다. 나에게 미소 지으며 “신부님, 아직 살아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난 후 “완치가 되었습니다.”라며 기뻐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별다른 소식이 없다. 늘 그렇게 말했다. “성령께서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병 때문에 이곳에 와서 변화된 그의 영성적 삶에 나는 놀란다. 나도 내 일이 바빠 제대로 친구를 방문하지 못했지만, 친구가 건강하리라 믿고 있다. 나는 암 말기의 여러 친구들과 지인들을 ‘성모 꽃마을’ 신부님께 맡겨드리고는 10년을 무심하게 지냈다.
오랜만에 ‘성모 꽃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신부님, 보양식 준비했습니다. 놀러오세요.” 10년 전 어렵게 셋방살이로 시설을 시작하며 건물 짖고 동분서주 하던 시절, 나는 신부님께 무관심했었다. 그런데 10년을 세고 10주년 기념을 한다며 식사에 초대한 것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염치가 없어 그날만큼은 꼭꼭 숨고 싶었다. 그러나 이 뜻 깊은 시간에 신부님이 마련한 특별한 보양식을 거절하면 더 이상 동료 사제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보양식 그 이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모 꽃마을’의 한낮도 무더위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도우미들이 도열해서 양산을 펼쳐 들고 방문하는 신부님들을 한분, 한분, 정성껏 맞이해주고 있었다. 불볕을 양산으로 받쳐 주는 도우미의 봉사가 미안해 나는 사양하자, 도우미는 나에게 “제가 암 말기 환자입니다.”란다. 나는 그 말에 눈이 열리기라도 하듯 그 도우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졌는지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제야 여기가 암 말기 환우를 위한 ‘성모 꽃마을’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어쩌면 나는 그들 마음을 내 마음에 새기지도 못하고 하위의 욕구인 보양식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제로서 어쩌면 관심 없이 멍청하게 지냈던 건 아닐까. 나는 그 환우 도우미의 밝게 빛나는 얼굴을 보며, “아니, 암 말기시라고요? 얼굴을 보니 전혀 아니신데요.” 했더니, 그분은 “몸은 전신이 암세포로 번졌지만 마음은 행복하답니다.”라고 답한다. 그 순간 도우미를 통하여 나는 하느님의 생명을 담고 사는 행복한 얼굴이 이런 모습이구나 하며 귀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그동안 빚진 마음에 보속이라도 하듯 나는 환우에게 축복의 손이 되어 그 빛나는 얼굴 위에 하느님의 복을 내려주고 있었다.
신부가 사제로 살아가며 가장 보람 있는 일은 하느님의 성전인 성당을 봉헌하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 마음에 하느님의 성전을 지어주는 일이다. 각 사람에게 하느님의 신령한 집을 마련해 주는 것, 곧 그들 마음에 하느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담아주는 일이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이면서 무한한 생명이길 바란다. 그런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담아주고, 참 생명으로 완성시켜주는 일이 사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을 통하여 암 말기 환우들을 잘 돌보도록 특별한 은혜를 담아 주셨다. 신앙인들이 믿고 바라는 ‘구원이다. 부활이다.’하는 단어의 심오한 의미들은 사람의 생명문제이고, 신부님은 그러기에 이들 생명문제를 놓고 구원을 위해 투신하신다. 그분들에게 구체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 모두를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도록 일을 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세속에 집착하며 살다가 죽음의 선고를 받고 비로소 손을 펴고, 인간 실존을 생각한다. 그제야 ‘헛살았구나!’ 하고 몸부림친다. 이런 절규에 가까운 몸부림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신령한 집을 지어주시니 참으로 신부님이 존경스럽다.
나는 그날, 성모 꽃마을에서 모처럼 특별한 영적 보양식을 먹고 돌아왔다. 하느님의 생명을 환우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양식을 통해 담아주시는 신부님의 성모 꽃마을 사랑이야기는 나에게 큰 영적 보양식이었다. 건강하다는 착각 속의 사람들은 꼭 이 곳에 들러 특별 보양식을 잘 드셨으면 한다. 존경하는 신부님과 그 일에 협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전한다.
아시아권에서 암 발생률이 최고라는 대한민국, 그래서 국민들 누구도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 소식에 가정이 공포에 떨고 자신은 독백처럼 생을 원망하고 좌절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제법 지나면 현실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모두를 맡기며 희망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생명임을 알게 되는 때가 이 순간이 아닐까.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투병이 겁나고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 가난한 암 말기 환우들이 생명이 되도록 희망하는 곳이 있다. 청원군 내수읍 원통리 ‘성모 꽃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서 환우들은 편안한 투병생활은 물론 하느님을 만나고 알아가며 영원한 생명을 꿈꾸고 희망한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전해주신 ‘부활의 기쁜 소식’이 어떤 것인가를 환우들에게 알게 하고, 환우들은 자기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나는 이 일을 하는 박창환 가밀로 신부님을 존경한다. 사제로 수품 된지 18년째를 맞이하는 이 신부님은, 공들여서 암 말기 환우 분들을 위한 쾌적한 시설, 아름다운 ‘성모꽃마을’을 조성하고, 10년 동안 환우들과 이곳에서 지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생명이 되어 세상을 떠난 분들이 무려 2천3백 명을 넘었다고 한다.
내 친구도 이곳에서 지낸다. 그는 말기 환자이면서도 늘 행복해 한다. 나에게 미소 지으며 “신부님, 아직 살아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난 후 “완치가 되었습니다.”라며 기뻐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별다른 소식이 없다. 늘 그렇게 말했다. “성령께서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병 때문에 이곳에 와서 변화된 그의 영성적 삶에 나는 놀란다. 나도 내 일이 바빠 제대로 친구를 방문하지 못했지만, 친구가 건강하리라 믿고 있다. 나는 암 말기의 여러 친구들과 지인들을 ‘성모 꽃마을’ 신부님께 맡겨드리고는 10년을 무심하게 지냈다.
오랜만에 ‘성모 꽃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신부님, 보양식 준비했습니다. 놀러오세요.” 10년 전 어렵게 셋방살이로 시설을 시작하며 건물 짖고 동분서주 하던 시절, 나는 신부님께 무관심했었다. 그런데 10년을 세고 10주년 기념을 한다며 식사에 초대한 것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염치가 없어 그날만큼은 꼭꼭 숨고 싶었다. 그러나 이 뜻 깊은 시간에 신부님이 마련한 특별한 보양식을 거절하면 더 이상 동료 사제가 아닐 것 같았다.
나는 보양식 그 이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모 꽃마을’의 한낮도 무더위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도우미들이 도열해서 양산을 펼쳐 들고 방문하는 신부님들을 한분, 한분, 정성껏 맞이해주고 있었다. 불볕을 양산으로 받쳐 주는 도우미의 봉사가 미안해 나는 사양하자, 도우미는 나에게 “제가 암 말기 환자입니다.”란다. 나는 그 말에 눈이 열리기라도 하듯 그 도우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졌는지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제야 여기가 암 말기 환우를 위한 ‘성모 꽃마을’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어쩌면 나는 그들 마음을 내 마음에 새기지도 못하고 하위의 욕구인 보양식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제로서 어쩌면 관심 없이 멍청하게 지냈던 건 아닐까. 나는 그 환우 도우미의 밝게 빛나는 얼굴을 보며, “아니, 암 말기시라고요? 얼굴을 보니 전혀 아니신데요.” 했더니, 그분은 “몸은 전신이 암세포로 번졌지만 마음은 행복하답니다.”라고 답한다. 그 순간 도우미를 통하여 나는 하느님의 생명을 담고 사는 행복한 얼굴이 이런 모습이구나 하며 귀한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그동안 빚진 마음에 보속이라도 하듯 나는 환우에게 축복의 손이 되어 그 빛나는 얼굴 위에 하느님의 복을 내려주고 있었다.
신부가 사제로 살아가며 가장 보람 있는 일은 하느님의 성전인 성당을 봉헌하는 일로 여겼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들 마음에 하느님의 성전을 지어주는 일이다. 각 사람에게 하느님의 신령한 집을 마련해 주는 것, 곧 그들 마음에 하느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담아주는 일이다. 인간은 유한한 생명이면서 무한한 생명이길 바란다. 그런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담아주고, 참 생명으로 완성시켜주는 일이 사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을 통하여 암 말기 환우들을 잘 돌보도록 특별한 은혜를 담아 주셨다. 신앙인들이 믿고 바라는 ‘구원이다. 부활이다.’하는 단어의 심오한 의미들은 사람의 생명문제이고, 신부님은 그러기에 이들 생명문제를 놓고 구원을 위해 투신하신다. 그분들에게 구체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들 모두를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도록 일을 하고 계신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세속에 집착하며 살다가 죽음의 선고를 받고 비로소 손을 펴고, 인간 실존을 생각한다. 그제야 ‘헛살았구나!’ 하고 몸부림친다. 이런 절규에 가까운 몸부림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신령한 집을 지어주시니 참으로 신부님이 존경스럽다.
나는 그날, 성모 꽃마을에서 모처럼 특별한 영적 보양식을 먹고 돌아왔다. 하느님의 생명을 환우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양식을 통해 담아주시는 신부님의 성모 꽃마을 사랑이야기는 나에게 큰 영적 보양식이었다. 건강하다는 착각 속의 사람들은 꼭 이 곳에 들러 특별 보양식을 잘 드셨으면 한다. 존경하는 신부님과 그 일에 협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