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책한 권 읽고나서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620 | 작성일 : 2009년 6월 6일

‘올바른 책’ 한 권 읽고 나서

  자연과 일생을 산 인간의 삶을 그린 영화, ‘워낭소리(Old partner)’! 이 영화는 한 노인이 아픈 다리를 절며 절 길을 힘겹게 오르면서 시작된다. 노인은 30년을 함께 지내던 소를 막 떠나보내고 불공을 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삼순할머니가 “소가 죽으니 그렇게 생각나요?” 하고 묻자, “그럼, 사람이나 짐승이나 말할 것 없지.”라며 노인이 답했다. 소가 남기고 떠난 ‘워낭’을 매만지는 노인의 모습이 애절하리만큼 소와의 끈끈한 관계를 알려준다. 
  요즈음은 농촌도 도시처럼 변해 삭막하긴 매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경제동물처럼 과학의 이기로 이익을 챙기는 농민들과는 다른, 진짜 ‘토종 노인’을 만났다. 농로를 따라 자동차로 논밭을 드나드는 길을 이 노인은 소달구지로 일터에 나가고, 손 모내기며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며, 낫으로 어렵게 벼를 수확한다. 노인은 결코 영농의 이기들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는 때때로 답답하지만 자꾸 들여다볼수록 청정하고 신선했다.
  옛 노인들은 이렇게 농사지으며 자식들을 공부시켜 도시로 내보냈다. 도시로 간 자녀들은 어머니의 품 같은 자연을 너무 빨리 잃어버리고 도시문화에 익숙해져 간다. 자녀들은 교실에 앉아 책만 읽고, 인쇄되지 않는 책, 다시 말해 아름다운 자연이 간직하는 책이 있음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삭막하게 자라다 보니 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도, 부모의 사랑도 읽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자녀들이 오랜만에 시골 아버지를 소풍 오듯 방문하고는 효도 같은 빈말을 한다. “아버지, 이제 그만 소파이소. 소 없으면 아버지도 편히 쉬실 텐데…. 우리들이 용돈 드릴 게요.” 이런 자식의 말에 아버지는 조금도 자식에게 기대고 싶은 비굴함이 없다. 아버지는 몸이 성치 않을 때라도 자식을 의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연과 벗하고 고향산천을 친구삼아 갈퀴손하고, 풀을 매면서 중노동하며 땅을 가꾸고 싶은 것이다.
  자녀들의 눈은 아버지가 세상에 뒤처진 패자처럼 보였다. 그러기에 아버지와 일소가 친구처럼 서로의 주고받은 운명이 멋진 행복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농약 치면, 사람이 먹고 죽는다. 사료 먹이면, 사람이 먹고 죽는다. 소가 사료 먹고 살찌면, 새끼 잘 못 낳는다.” 얼마나 바보처럼 순수하고 숭고한가. 마음이 갑자기 부러워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만 불가능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 고물 라디오의 구성진 노래를 듣는다. ‘내 청춘을 돌려 다오!’ 노인의 신세타령처럼 텅 빈 겨울의 찬바람이 그의 인생에 일었다. 도시의 삭막한 노인과 다르게 자연이란 책을 읽고 지낸 노인은 흥이 일고 편안하고 행복했다. 죽음을 앞 둔 뼈만 앙상한 소도 수명이 다했지만 덩달아 편안하고 행복한 듯하다. 소가 죽었다. 코뚜레가 제거되고, ‘워낭’도 떼어냈다. 노인은 ‘워낭’을 매만지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동안 애썼다. 좋은 데 가거라.” 매일 매일을 소풍 같은 일상을 자연과 벗하며 소와 나누던 새참, 노인은 “나도 한 잔, 너도 한 잔” 서로 정겹게 나누던 막걸리 한 잔을 소 무덤에 수북이 쏟아 붓는다. 노인 덕분에 소는 제 수명보다 30년을 더 살았고, 소 덕분에 노인의 삶도 아름답고 행복했다. 영화는 절정에 이르는지 소와 나누던 노인의 생이 숭고하리만큼 세상을 향해 큰 행복감으로 피어올랐다.
  이 노인과 달리 평생을 ‘일’과 씨름하며 자신을 뽐내다 정년을 맞이한 또 다른 노인을 생각했다. 오르지 공부와 일 잘 하는 것만 믿고 으스대면서 치열한 한 줄 세우기 경쟁에서 윗자리에 살고 내려온다. 그것이 행복이라 믿었기에 더 열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러한 삶이 다 헛됨을 알고는 퇴직한 후, 이 노인처럼 행복하겠다며 귀향을 꿈꿨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삶의 터전도 ‘왜 이제 찾아 왔느냐.’며 텃새를 한다. ‘새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도 거부한다. 자녀들에게 모든 것 내어주고, 이제 힘들게 살아갈 30년을 걱정한다. 그리고는 한 숨을 지을 뿐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처럼 자연이 주는 책을 젊은이들도 읽으면서 나이가 들었으면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우리 앞에 항상 있는데도 공부만 하며 일 중심으로 정신없이 살아 온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자연은 이 노인처럼 아름답질 못하다. 정년퇴직하고 시골로 내려가 보지만 영화 속의 노인이 보여주는 행복은 요원하다. “참 행복이 무엇일까?” 그 답을 인쇄되지 않는 책 속에서 찾으면서 늙음을 준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