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의 숫자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103 | 작성일 : 2009년 7월 10일

‘열둘’의 숫자

 우리는 성경에서 ‘열둘’의 숫자와 관련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열두 살 난 딸이 있는 회당 장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니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한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내가 저 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며 그 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마태9.18-22) “열두 살 난 예수님은 성전에서 율사들과 토론을 하고 때로는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루카 2,42-47) 이처럼 ‘열둘’이라는 숫자는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열두 살은 오늘날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의 나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이고, 理性이 깨어나는 시기이며, 철이 들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일반적으로 열두 살의 시기는 버릇이 훈련되고 습관화가 완료되는 최대시기로 보고 있다. 교육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생후 2개월째 가장 편안한 자세에 대한 습관이 생겨나 자세가 불편하면 거칠게 움직이며 운다고 하는데, 이는 머릿속에 입력된 좋은 자세 때문이라고 하며, 이 때문에 생후 2개월째는 지독한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교육학에서는 이런 버릇들이 완성되는 시기를 최대 열두 살로 보고 있다. 늦어도 열두 살까지 이런 습관 형성의 작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결국 열둘이라는 숫자는 자기 마음과 몸의 바탕을 이루는 나이이다. 만일 이 때까지 옳은 습관을 세우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하면 삶에서 낙오자가 됨을 의미한다. 열두 살 된 딸의 죽음, 열 두해 동안 혈루 증에 걸린 고질병의 여인…. 이는 그 이상 밀리면 영원히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는 한계의 의미일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이, 열둘, 갑자기 육체가 양적으로 커나가고, 지혜가 자라나는 나이다. 배우기도 하지만 따지기도 하는 나이이다. 놀랄 만큼 깨어남을 실감하는 나이이다. 지식의 확장이 시도되고, 지혜가 하나 둘 피어나는 나이이다. 여기서 밀리면 지적장애인이 되는 것이고, 정상인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어진다. 어려운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녀에 대한 절박함을 간직할 수밖에 없다.
 자녀들이 말썽을 부려보라. 그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하느님께 맡길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하느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느님께 의탁함이고 신뢰함이며, 그 어려움 때문에 부모의 신앙도  따라 자라나고 자녀들도 깨어나고 일어난다. “탈리타 꿈! 소녀야 어서 일어나라.” (마르 5,41) 이 얼마나 신명나는 기적이며 기쁨의 일인가. 만일 열둘이 지닌 어려움을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자녀들은 죽음이라는 한계에 직면하여 여든까지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열둘을 넘기 전에 자녀의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