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요한 21.19)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98 | 작성일 : 2010년 4월 23일
“나를 따르라.”(요한 21.19)
예수님께서 한 인간을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생명으로의 초대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목숨까지 바치는 착한목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의미이다. 어부출신 요한의 아들 시몬을 예수님께서 부르셨다. 첫 만남은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 서 계셨을 때의 일이다. 배 두 척을 보셨고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에 특별히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군중을 향해 가르치고 계셨다. 말씀을 마치신 다음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어부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5.1-11) 이렇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심은 특별한 뜻이 있었다.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심이었다. 베드로는 미래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인 것이다. 베드로의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은 분명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9.20),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을 감동시켰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구원계획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베드로는 구원의 길에 서신 예수님을 배반했고 새벽닭이 울자 통렬히 뉘우치며 울었다. 예수님은 비유말씀에서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을 때처럼 그의 배반에 대해서도 뉘우침을 보시고 조건 없이 용서해 주셨다. 아직도 사도가 되기엔 많이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일이다.(요한 21.1-19) 시몬 베드로는 낙심하고 다시 옛날의 어부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제자들은 그물을 던졌고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순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그물을 끌어올려 뭍으로 올라왔다. 숯불도, 물고기도, 빵도 마련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고 말씀하고 계셨다. 제자들은 감히 누구도 “누구십니까?”하고 묻지 않았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아침식사를 나눈 다음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런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셨다. 처음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처럼 이제 베드로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즈음에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요한 21.19) 베드로의 따름은 어부 출신에서 이제는 사람을 낚는 사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따라 나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식사를 마련하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예수님의 전 인격을 선물로 받고 모든 일을 위해 식사를 마련항 준비가 완료되었다. 베드로, 케파, 바위라는 베드로 사도 위에 하느님의 교회를 우뚝 세워주셨고 그 교회를 베드로에게 맡겨 주셨다.
예수님의 베드로에 대한 부르심은 이렇게 분명한 목표를 수행하는 착한목자로서의 삶으로 세워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의 삶이 곧 우리들의 삶임을 가르친다.
예수님께서 한 인간을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생명으로의 초대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부활의 증인으로서 목숨까지 바치는 착한목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의미이다. 어부출신 요한의 아들 시몬을 예수님께서 부르셨다. 첫 만남은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 서 계셨을 때의 일이다. 배 두 척을 보셨고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에 특별히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군중을 향해 가르치고 계셨다. 말씀을 마치신 다음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어부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5.1-11) 이렇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을 따라 나섰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부르심은 특별한 뜻이 있었다.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심이었다. 베드로는 미래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인 것이다. 베드로의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고백은 분명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9.20),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을 감동시켰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구원계획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베드로는 구원의 길에 서신 예수님을 배반했고 새벽닭이 울자 통렬히 뉘우치며 울었다. 예수님은 비유말씀에서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을 때처럼 그의 배반에 대해서도 뉘우침을 보시고 조건 없이 용서해 주셨다. 아직도 사도가 되기엔 많이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일이다.(요한 21.1-19) 시몬 베드로는 낙심하고 다시 옛날의 어부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제자들은 그물을 던졌고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순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그물을 끌어올려 뭍으로 올라왔다. 숯불도, 물고기도, 빵도 마련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고 말씀하고 계셨다. 제자들은 감히 누구도 “누구십니까?”하고 묻지 않았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아침식사를 나눈 다음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이런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셨다. 처음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처럼 이제 베드로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즈음에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요한 21.19) 베드로의 따름은 어부 출신에서 이제는 사람을 낚는 사람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따라 나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식사를 마련하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베드로도 예수님의 전 인격을 선물로 받고 모든 일을 위해 식사를 마련항 준비가 완료되었다. 베드로, 케파, 바위라는 베드로 사도 위에 하느님의 교회를 우뚝 세워주셨고 그 교회를 베드로에게 맡겨 주셨다.
예수님의 베드로에 대한 부르심은 이렇게 분명한 목표를 수행하는 착한목자로서의 삶으로 세워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의 삶이 곧 우리들의 삶임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