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들이 밝힌 문제선언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339 | 작성일 : 2010년 5월 24일
문제아들이 밝힌 문제선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붙은 대자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3면 분량의 내용을 담은 대자보 제목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의 대학 거부 선언은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목적 없이 공부만 해오다 대학 3학년 때야 정신이 들었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서글픈 20대.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만한 대학시절이지만 여전히 내 자신을 학점에 팔아넘기고, 자유로워야 할 시간인데도 두려움에 팔아넘기고, 정의로워야 할 시간인데도 눈에 보이는 이익에 팔아넘긴, 대학다운 대학이 없는 그래서 대학을 거부한 한 젊은이가 있다. 대학생활을 통해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대학을 거부하며 저항한 김예슬 학생. 이 선언을 놓고 대학은 김예슬 학생을 한 문제아로 간단히 치부할지 모른다. 이제 문제아는 똑똑한 학생들임을 알아야 한다. 문제를 진정으로 문제로 보지 않는다면, 학교는 금이 가고 어느 시점에는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 나라는 대학생 김예슬로 보지 않고 인간 김예슬의 문제로 보아야 정확한 문제 풀이가 된다는 충격적인 선언이다.
고등학교 내내 교실에서 지식이라는 밥을 끊임없이 먹어야만 하고, 또 대학에서는 오르지 자격증을 따서 상품으로 간택되어야 된다는 사고가 잘못 되었음을 알고 대학을 그만두고 싶었고,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예슬 선언’은 곧 인간선언이다. 사람들은 뭔가 알듯 중얼거린다. 그러나 이런 중얼거림의 분명한 외침이고 싶었고, 이 시대에 암울한 이들에게는 힘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이 서글픈 현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외쳤다. 문제아는 없다. 가출하고 학교에 부적응하고, 등교거부를 한 학생들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이 교육다워야 하고 교육목적이 뚜렷해야 함을, 그래서 학생들이 희망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함을 외쳤다. 청소년이 성장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풀어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도와 줄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그러나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청소년들에게 그 책임을 돌려 직무유기하며 문제아로 낙인찍고 퇴출시켰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김예슬 선언’이 빈도를 더해 갈 것이다.
학교는 ‘또 하나 문제아가 태어났구나!’ 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지녔다 하여 문제아로 보면 결코 안 된다. 그들은 철학이 있으며 목표가 뚜렷한 학생이다. 그의 선언이 더욱 가세 할 때는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닐 것이다. 때를 정확히 보라는 의미로 많은 이가 이 선언에 동조한다. 김예슬은 "大學이라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고 선언하고 대학을 거부한 것은, 한 대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적인 신선한 행동이었다. 스스로 큰 물음을 던지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 김예슬의 선언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거울이 되었다. 무한경쟁의 현실, 우리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학문제, 사회 양극화의 뇌관인 교육문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이 선언이 주는 느낌은 얼마나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취직을 못해 암울하고 희망적이지 못함을 함께 울어주는 듯하다. 기성세대들이 철학을 지니고 정신차려 살아가도록 하는 생명 선언이기도 하다.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붙은 대자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3면 분량의 내용을 담은 대자보 제목이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의 대학 거부 선언은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목적 없이 공부만 해오다 대학 3학년 때야 정신이 들었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서글픈 20대.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만한 대학시절이지만 여전히 내 자신을 학점에 팔아넘기고, 자유로워야 할 시간인데도 두려움에 팔아넘기고, 정의로워야 할 시간인데도 눈에 보이는 이익에 팔아넘긴, 대학다운 대학이 없는 그래서 대학을 거부한 한 젊은이가 있다. 대학생활을 통해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대학을 거부하며 저항한 김예슬 학생. 이 선언을 놓고 대학은 김예슬 학생을 한 문제아로 간단히 치부할지 모른다. 이제 문제아는 똑똑한 학생들임을 알아야 한다. 문제를 진정으로 문제로 보지 않는다면, 학교는 금이 가고 어느 시점에는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 나라는 대학생 김예슬로 보지 않고 인간 김예슬의 문제로 보아야 정확한 문제 풀이가 된다는 충격적인 선언이다.
고등학교 내내 교실에서 지식이라는 밥을 끊임없이 먹어야만 하고, 또 대학에서는 오르지 자격증을 따서 상품으로 간택되어야 된다는 사고가 잘못 되었음을 알고 대학을 그만두고 싶었고,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예슬 선언’은 곧 인간선언이다. 사람들은 뭔가 알듯 중얼거린다. 그러나 이런 중얼거림의 분명한 외침이고 싶었고, 이 시대에 암울한 이들에게는 힘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이 서글픈 현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외쳤다. 문제아는 없다. 가출하고 학교에 부적응하고, 등교거부를 한 학생들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이 교육다워야 하고 교육목적이 뚜렷해야 함을, 그래서 학생들이 희망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함을 외쳤다. 청소년이 성장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풀어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도와 줄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그러나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청소년들에게 그 책임을 돌려 직무유기하며 문제아로 낙인찍고 퇴출시켰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김예슬 선언’이 빈도를 더해 갈 것이다.
학교는 ‘또 하나 문제아가 태어났구나!’ 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지녔다 하여 문제아로 보면 결코 안 된다. 그들은 철학이 있으며 목표가 뚜렷한 학생이다. 그의 선언이 더욱 가세 할 때는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닐 것이다. 때를 정확히 보라는 의미로 많은 이가 이 선언에 동조한다. 김예슬은 "大學이라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고 선언하고 대학을 거부한 것은, 한 대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적인 신선한 행동이었다. 스스로 큰 물음을 던지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 김예슬의 선언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거울이 되었다. 무한경쟁의 현실, 우리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학문제, 사회 양극화의 뇌관인 교육문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이 선언이 주는 느낌은 얼마나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취직을 못해 암울하고 희망적이지 못함을 함께 울어주는 듯하다. 기성세대들이 철학을 지니고 정신차려 살아가도록 하는 생명 선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