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는 두발자유학교 아닌가요?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618 | 작성일 : 2010년 6월 2일
이 학교는 두발 자유잖아요
학생들의 머리가 노랑, 빨강의 염색머리가 예전처럼 눈에 뜨이질 않는다. 장신구도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이런 때에 2학년의 한 학생이 스님머리가 되어 나타났다. 며칠 후 이번에는 3학년 한 학생이 완전히 밑을 돌려 위로 쳐 깎고, 머리 위만 남겨 둔 마치 절벽위에 숲처럼 해병대 병사들의 두발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스님처럼 깎고 나타난 학생은 무더운 초여름인데 미안한 지 벙거지를 걸치고 다닌다. 시원하게 깎았으면 그대로 다닐 일이지 벙거지를 덮고 다니니 보는 나로서는 불쾌감이 들었다. 자기 이미지 관리에 손상을 입힌다는 것을 모른다.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거, 인간관계가 좋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기관리와 됨됨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빡빡이 와 절벽위에 숲 모양을 한 학생들 모습이 비위를 거스른다. 나는 그 학생들을 즉시 불러 세웠다. “내가 너희의 머리를 보는 순간 불쾌한 느낌이 들었거든. 대통령은 대통령의 두발을, 군인은 군인의 두발을, 학생은 학생의 두발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신부님, 제 일이 뭐가 잘 못되었나요? 여기는 두발자유학교 아닌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데 학생 신분인 너의 모습이 상대에게 협오감을 갖게 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상하게 하는 거지. 선생님이 너희의 행동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거든, 너희의 이런 행동을 보고 잘못된것을 말해줄 줄 아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거야! 자네는 군인이 아니고 학생이잖아. 학생은 학생다운 머리를 하는 것이 Quality란다. 자네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도 언제나 남을 생각하고 배려해서, 올바른 길, 즉 정도를 걸을 줄 알 때, 자기의 미래도 희망적이고 성숙하는데 이런 노력들이 Quality 하다고 하지. 우린 학교에서 3년 동안 그걸 배우고 있지 않니. 자네 이런 두발의 모습을 부모님이 알고 계시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던가?” “야, 시원하겠구나. 라고만 한 말씀하셨어요.
나는 학생의 말을 들으며 어이가 없어 한숨을 지어 보였다. “부모님께 그동안 자네가 속 썩여주던 것 생각해서 이제 부모님도 지쳐있던지. 아니면 양업에서 배운 교육원리를 적용하여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시원하다’는 말씀의 본뜻은 부모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자네가 알았으면 하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3학년 학생들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대안이다, 자유이다.’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살았으면 한다. ‘대안’은 기존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향모색이지. 여기가 그런 대안을 지닌 대안학교란다. 문제아 수용소가 아니라고 나는 3년 동안 너희에게 수도 없이 말해왔다. “두발자유잖아요!” 자유는 제멋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내 인격을 가꾸고 좋은 이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수단이다. 미래를 희망하고 꿈꿀 수 있도록 고통을 전제하며 자신을 훌륭하게 만들어 가는 수단이 자유란다. 제멋대로 하는 것은 방종이지 않니. 내가 너희들에게 자유와 대안의 의미를 그렇게 말해 왔음에도 아직도 3학년이 되어서도 그렇게 알고 이해하고 있다니 더 많이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겠구나. 혹 1학년이 대안과 자유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을 때 3학년은 이를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이제 철이 들 3학년이다. 그 철듦이 아직도 왔다 갔다 한다면 그래도 우리는 너희를 교육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갖고 타당한 논리를 펴 자상하게 가르쳐줄 책임이 교사에게 있다. 해병대 머리를 한 학생, 빡빡이 학생의 모습을 보고 아무런 대화 없이 지나친다면 직무유기이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미용실에 가서 가지런히 다듬고 들어오라고 부탁을 했다. 학생은 약속을 했다. 그리고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발게 지내고 있다.
학생들의 머리가 노랑, 빨강의 염색머리가 예전처럼 눈에 뜨이질 않는다. 장신구도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이런 때에 2학년의 한 학생이 스님머리가 되어 나타났다. 며칠 후 이번에는 3학년 한 학생이 완전히 밑을 돌려 위로 쳐 깎고, 머리 위만 남겨 둔 마치 절벽위에 숲처럼 해병대 병사들의 두발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스님처럼 깎고 나타난 학생은 무더운 초여름인데 미안한 지 벙거지를 걸치고 다닌다. 시원하게 깎았으면 그대로 다닐 일이지 벙거지를 덮고 다니니 보는 나로서는 불쾌감이 들었다. 자기 이미지 관리에 손상을 입힌다는 것을 모른다. 남에게 사랑받는다는 거, 인간관계가 좋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자기관리와 됨됨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빡빡이 와 절벽위에 숲 모양을 한 학생들 모습이 비위를 거스른다. 나는 그 학생들을 즉시 불러 세웠다. “내가 너희의 머리를 보는 순간 불쾌한 느낌이 들었거든. 대통령은 대통령의 두발을, 군인은 군인의 두발을, 학생은 학생의 두발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신부님, 제 일이 뭐가 잘 못되었나요? 여기는 두발자유학교 아닌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데 학생 신분인 너의 모습이 상대에게 협오감을 갖게 하는데.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상하게 하는 거지. 선생님이 너희의 행동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되거든, 너희의 이런 행동을 보고 잘못된것을 말해줄 줄 아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거야! 자네는 군인이 아니고 학생이잖아. 학생은 학생다운 머리를 하는 것이 Quality란다. 자네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도 언제나 남을 생각하고 배려해서, 올바른 길, 즉 정도를 걸을 줄 알 때, 자기의 미래도 희망적이고 성숙하는데 이런 노력들이 Quality 하다고 하지. 우린 학교에서 3년 동안 그걸 배우고 있지 않니. 자네 이런 두발의 모습을 부모님이 알고 계시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던가?” “야, 시원하겠구나. 라고만 한 말씀하셨어요.
나는 학생의 말을 들으며 어이가 없어 한숨을 지어 보였다. “부모님께 그동안 자네가 속 썩여주던 것 생각해서 이제 부모님도 지쳐있던지. 아니면 양업에서 배운 교육원리를 적용하여 기다려주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시원하다’는 말씀의 본뜻은 부모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자네가 알았으면 하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3학년 학생들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대안이다, 자유이다.’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살았으면 한다. ‘대안’은 기존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향모색이지. 여기가 그런 대안을 지닌 대안학교란다. 문제아 수용소가 아니라고 나는 3년 동안 너희에게 수도 없이 말해왔다. “두발자유잖아요!” 자유는 제멋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내 인격을 가꾸고 좋은 이미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수단이다. 미래를 희망하고 꿈꿀 수 있도록 고통을 전제하며 자신을 훌륭하게 만들어 가는 수단이 자유란다. 제멋대로 하는 것은 방종이지 않니. 내가 너희들에게 자유와 대안의 의미를 그렇게 말해 왔음에도 아직도 3학년이 되어서도 그렇게 알고 이해하고 있다니 더 많이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겠구나. 혹 1학년이 대안과 자유의 의미를 잘 못 알고 있을 때 3학년은 이를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이제 철이 들 3학년이다. 그 철듦이 아직도 왔다 갔다 한다면 그래도 우리는 너희를 교육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설득력을 갖고 타당한 논리를 펴 자상하게 가르쳐줄 책임이 교사에게 있다. 해병대 머리를 한 학생, 빡빡이 학생의 모습을 보고 아무런 대화 없이 지나친다면 직무유기이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미용실에 가서 가지런히 다듬고 들어오라고 부탁을 했다. 학생은 약속을 했다. 그리고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발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