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점점 어려워진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348 | 작성일 : 2010년 7월 22일
교육이 점점 어려워진다.
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은 소질과 적성이 고려치 않은 수재 중심의 학교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르지 성적에 따라 과학고, 특목고, 인문계고, 전문계고 순으로 진학이 결정된다. 인문계고 는 비평준화 도심학교와 평준화 지역의 학교로 구분되고, 또한 전기 모집 군과 후기 모집 군으로 구별된다. 전문계고는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학교의 교육목표이다. 그런데 이미 전문계고는 그 성격을 상실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이 86%, 10명중 9명이 대학을 진학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골 인문계고나 전문계고의 현재 위치는 어떤 학교인가? 도시 중심 인문계고를 진학 못한 학생들이 마지 못해 가는 학교정도로 인식 된듯하다. 이는 교육정책의 실패며 매우 서글픈 일이다.
그들의 출석부는 결석생으로 지저분하고, 자퇴생들로 학교가 어수선하다. 자퇴율의 증가 이유를 선생님들은 실업률 중가, 그러 인한 경제난, 부부의 이혼율 급증으로 돌리지만, 그것은 이유가 못 된다. 가장 주된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의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열등감을 갖게 하는 학교를 누가 다니겠는가? 학교는 이런 근본적인 이유를 학교 창고 속에 처넣고 딴 이유를 꺼내 놓고 있는 것이다. 전문계고의 학생들은 졸업 후 전문 인력으로 태어나려는 목적으로 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여야만 한다. 그런데 학생 대부분이 도시 중심 학교로 갈 곳이 마떵치 않아 시골 인문계고나 전문계고를 다니고 있으니 교육이 되겠는가. 인문계고는 공부에 찌들어 가기 싫고, 전문계고는 사기의욕저하로 가기 싫고 ........
내 동기 교사들이 일찍 명예퇴직을 했다. 조기 퇴직한 이유를 물었더니 더 이상 학교에 근무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한다. 오랫동안 농고 교사를 해 왔지만 요즘처럼 학생들이 힘들던 때는 없다고 했다. 교과시간 때 손톱에 매니큐어를 짙게 바른 대다수의 여학생이 흙에 손을 대기조차 싫어한다고 했다. 풀 한 포기 힘겹게 뽑아 올리고는, “선생님, 저도 풀 뽑았어요. 여기 보세요.” 하며 나간지럽게 구는 꼴이란 도무지 학생들이 아니란다. 그런 학생들이 다수를 이루어, 농업이 소질과 적성에 맞아 전문 농사꾼이 되려는 학생들의 수업까지 훼방하고 있으니, 속이 뒤집힌다고 한다. 그런 대다수의 학생들이 미래의 목적도 없이 수업에 앉아 있으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들이 감정만 솟는다고 했다. “선생님, 그런 것을 왜 하나요? 저는 하기 싫은데요.” 그렇게 하기 싫은 학교를 왜 진학해서 잘 지내려는 학생들까지 방해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목표 없이 지내는 교육현장의 악순환이다. 정작 농업인으로 미래의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려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전문계고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선택하는 학교로 전락하니 교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학생들이 전문계고에 있어야 할까? 교육정책이 잘 못되어도 한참을 잘못했다. 학교는 그런 학생들을 문제아, 부적응아라고 비난만 알 것인가. 왜 농업을 제대로 배워 미래를 행복한 사람으로 육성할 학생들만을 선발하지 않는가. 그것도 수재 교육이라하여 키워줄 용의는 없는가, 전문계고를 다니는 학생들도 과학고, 특목고를 다니는 학생들만큼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결코 무단결석하거나 자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시골에 있는 인문계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보자 “신부님, 제가 있는 학교가 대안학교입니다.” 라며 한숨을 세고 있었다. 나는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은근히 화가 났다. 그 선생님은 대안학교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 선생님이 자기 학교 상황에 맞는 진정한 대안교육을 마련하여 학생들에게 희망과 꿈을 갖게하는 학교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런 의식의 전환이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 아닐까. 매일 교실이란 공간에서 꼴지들 까지 왼 종일 가두고 오지 선다형 문제풀기를 재촉하는 모습은 이제 초등학교 학생들까지도 길들인다고 들었다.
전국 일제고사로 학교 줄 세우기를 하고, 그 일로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학생들에게 답 알려주기가 그런 것이다. 교육현장은 온통 불신의 현장이다. 이는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잃어버린 결과물들이다. 어디서부터 가닥을 잡아야 할지를 아무도 엄두도 내질 못하고 있다. 어려워만 지는 교육, 학생들의 성적 순이 아니라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려 학교 선택이 주어지고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최고로 여기고 자긍심을 갖게 해주어야 하겠다. 교육에 본질에 충실한 교육, 인성교육으로 튼튼한 바탕을 이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은 소질과 적성이 고려치 않은 수재 중심의 학교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르지 성적에 따라 과학고, 특목고, 인문계고, 전문계고 순으로 진학이 결정된다. 인문계고 는 비평준화 도심학교와 평준화 지역의 학교로 구분되고, 또한 전기 모집 군과 후기 모집 군으로 구별된다. 전문계고는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여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학교의 교육목표이다. 그런데 이미 전문계고는 그 성격을 상실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이 86%, 10명중 9명이 대학을 진학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골 인문계고나 전문계고의 현재 위치는 어떤 학교인가? 도시 중심 인문계고를 진학 못한 학생들이 마지 못해 가는 학교정도로 인식 된듯하다. 이는 교육정책의 실패며 매우 서글픈 일이다.
그들의 출석부는 결석생으로 지저분하고, 자퇴생들로 학교가 어수선하다. 자퇴율의 증가 이유를 선생님들은 실업률 중가, 그러 인한 경제난, 부부의 이혼율 급증으로 돌리지만, 그것은 이유가 못 된다. 가장 주된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의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열등감을 갖게 하는 학교를 누가 다니겠는가? 학교는 이런 근본적인 이유를 학교 창고 속에 처넣고 딴 이유를 꺼내 놓고 있는 것이다. 전문계고의 학생들은 졸업 후 전문 인력으로 태어나려는 목적으로 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여야만 한다. 그런데 학생 대부분이 도시 중심 학교로 갈 곳이 마떵치 않아 시골 인문계고나 전문계고를 다니고 있으니 교육이 되겠는가. 인문계고는 공부에 찌들어 가기 싫고, 전문계고는 사기의욕저하로 가기 싫고 ........
내 동기 교사들이 일찍 명예퇴직을 했다. 조기 퇴직한 이유를 물었더니 더 이상 학교에 근무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한다. 오랫동안 농고 교사를 해 왔지만 요즘처럼 학생들이 힘들던 때는 없다고 했다. 교과시간 때 손톱에 매니큐어를 짙게 바른 대다수의 여학생이 흙에 손을 대기조차 싫어한다고 했다. 풀 한 포기 힘겹게 뽑아 올리고는, “선생님, 저도 풀 뽑았어요. 여기 보세요.” 하며 나간지럽게 구는 꼴이란 도무지 학생들이 아니란다. 그런 학생들이 다수를 이루어, 농업이 소질과 적성에 맞아 전문 농사꾼이 되려는 학생들의 수업까지 훼방하고 있으니, 속이 뒤집힌다고 한다. 그런 대다수의 학생들이 미래의 목적도 없이 수업에 앉아 있으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들이 감정만 솟는다고 했다. “선생님, 그런 것을 왜 하나요? 저는 하기 싫은데요.” 그렇게 하기 싫은 학교를 왜 진학해서 잘 지내려는 학생들까지 방해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목표 없이 지내는 교육현장의 악순환이다. 정작 농업인으로 미래의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려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전문계고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선택하는 학교로 전락하니 교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학생들이 전문계고에 있어야 할까? 교육정책이 잘 못되어도 한참을 잘못했다. 학교는 그런 학생들을 문제아, 부적응아라고 비난만 알 것인가. 왜 농업을 제대로 배워 미래를 행복한 사람으로 육성할 학생들만을 선발하지 않는가. 그것도 수재 교육이라하여 키워줄 용의는 없는가, 전문계고를 다니는 학생들도 과학고, 특목고를 다니는 학생들만큼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결코 무단결석하거나 자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시골에 있는 인문계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보자 “신부님, 제가 있는 학교가 대안학교입니다.” 라며 한숨을 세고 있었다. 나는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은근히 화가 났다. 그 선생님은 대안학교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 선생님이 자기 학교 상황에 맞는 진정한 대안교육을 마련하여 학생들에게 희망과 꿈을 갖게하는 학교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런 의식의 전환이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 아닐까. 매일 교실이란 공간에서 꼴지들 까지 왼 종일 가두고 오지 선다형 문제풀기를 재촉하는 모습은 이제 초등학교 학생들까지도 길들인다고 들었다.
전국 일제고사로 학교 줄 세우기를 하고, 그 일로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학생들에게 답 알려주기가 그런 것이다. 교육현장은 온통 불신의 현장이다. 이는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잃어버린 결과물들이다. 어디서부터 가닥을 잡아야 할지를 아무도 엄두도 내질 못하고 있다. 어려워만 지는 교육, 학생들의 성적 순이 아니라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려 학교 선택이 주어지고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최고로 여기고 자긍심을 갖게 해주어야 하겠다. 교육에 본질에 충실한 교육, 인성교육으로 튼튼한 바탕을 이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