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현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44 | 작성일 : 2010년 8월 23일
선택과 현실
선택(選擇, choice)은 일반적으로 가장 적당한 것을 골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의 문제는 선택을 하는 그 인간의 가능성까지를 포함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연관에서 파악될 수 있으나, 그런 경우에는 자유선택과 어떤 필연적 법칙성과의 대립관계가 문제된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도 취급되듯이 여기서는 행위의 목표가 전제되는 경우에 행위자에 허용된 수단과 선택이 문제된다.
근대에 와서는 특히 그리스도교적인 섭리의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있어 윤리적인 자유선택의 가능성이 문제되고, 그에 대해서 가령 I.칸트는 실천이성에 기초를 둔 정언적 명법(定言的命法)에 자유의지를 인정하였다. 또한 S.A.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선택을 실존의 한 카테고리라 생각하였고, H.베르그송도 실존의 양상을 자유선택에서 구하였으나, 그는 한계상황에 있는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그의 전인격과 전생명을 걸고 하는 선택을 창조적 선택이라고 하였다.
현실(現實, reality)은 비현실, 초현실 등과 대립되는 말로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몽환(夢幻) 등의 비현실에 대하여 사용될 때는 양자를 구획 짖는 기준이 제반 과학·인식론(認識論)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초현실 가까이 느껴지는 사실이라는 의미에서 구체적·개별적 경험이 현실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현실은 극한이어서 오히려 상대적·주관적이 되어, 이론적 추상(抽象)의 소산(所産)에 불과하게 되므로, 어떤 학적 이론구성에 의한 통합적 사실이 현실이라고도 생각된다. 현실은 또한 존재론(存在論)·논리의 용어로서 가능·우연·필연 등과 대비되는 양상개념(樣相槪念)의 하나이며, 더욱이 윤리적으로는 이상·이념과 대비하여 사용되는데, 양자의 어느 편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차이가 생긴다. 실존주의에서도 선택은 실존의 규정계기(規定契機)로서 중심적 문제가 된다.(두산 백과사전 참조)
우리 양업학교의 교육원리는 윌리암 글라서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의 ‘선택’도 자유의지와 밀접히 관계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필연적 법칙성과 팽팽히 대립각을 세울 때가 많다. 미성숙과 성숙의 차이 때문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자유는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양질의 선택일 때, 그 자유의지는 선택을 돕는 수단이 된다. 요즘 오늘의 세대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월남전 참전세대이다. 그 세대들은 앞만 보고 시키는 대로 또박 또박 살아 온 세대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통해 자라난 2세, 3세들은 너무나도 다르다. 오늘의 청소년 세대들은 부모님의 일방적인 간섭이나 강요를 거부한다. 또한 이기주의 성향으로 자라나 자기만 알고 제멋대로의 자유를 남용하고, 선택의 기준도 분명치 않아 생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머무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것이 부모의 자녀 교육 책임이다. 이런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양업학교는 공교육의 문제의 대안으로 출발한 대안학교이다. 학생들에게 자유와 선택, 그리고 현실이란 단어와 밀접히 연관되어졌다. 공교육은 외적통제, 자극이론으로 학업성취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오늘 세대들은 점점 더 외적통제의 교육방법을 힘들어 하고, 이는 또 다른 양상의 문제점이다. 이에 양업학교는 내적통제의 이론을 그 대안으로 마련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처럼 우리도 일찍이 개인을 존중하고 그들 자신이 자유의지를 통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훈련해 왔다. 문제해결은 기다려주고 함께하고 성숙과 미성숙 사이에 눈높이를 조율하는 노력도 필요했다. 사실 학생들이 자유의지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더 힘든 문제였다. 늘 성숙의 기준인 필연적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이유 없이 반기를 들었다. 그것도 간섭이고 강요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학생 자신이 미래를 생각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와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당장만 생각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싶어 했다. 필연적 법칙을 수용하기까지는 설득력이 필요했고 시간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청소년들을 정언적 명법으로 인도할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현실은 미래를 향한 선택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현실은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열려져 있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현실을 놓고 자유의지를 통해 올바로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성취감을 높여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을 양질의 기준에 대입하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려 할 때 양업학교 3년 생활은 빛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다면 언제나 자신에게 공허한 시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은 수시모집에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 바쁜 시기이다. 입시사정관에게 제출할 포트폴리오는 대안학교 교육철학이 녹아나야 한다. ‘대안학교’와 ‘자유’의 의미, 선택과 현실의 함수관계, 미성숙에서 성숙을 이룬 학습동력, 이런 요소를 자기의 삶 안에서 어떻게 조율하고 발전시켜 갔는지 하는 내용이 감동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녹아나야 한다. 학생들이 나는 양업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가 아니라, 그 경험이 바탕이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나를 발전시켰는가를 철학적으로 조명해야할 것이다.
선택(選擇, choice)은 일반적으로 가장 적당한 것을 골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의 문제는 선택을 하는 그 인간의 가능성까지를 포함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연관에서 파악될 수 있으나, 그런 경우에는 자유선택과 어떤 필연적 법칙성과의 대립관계가 문제된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도 취급되듯이 여기서는 행위의 목표가 전제되는 경우에 행위자에 허용된 수단과 선택이 문제된다.
근대에 와서는 특히 그리스도교적인 섭리의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있어 윤리적인 자유선택의 가능성이 문제되고, 그에 대해서 가령 I.칸트는 실천이성에 기초를 둔 정언적 명법(定言的命法)에 자유의지를 인정하였다. 또한 S.A.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선택을 실존의 한 카테고리라 생각하였고, H.베르그송도 실존의 양상을 자유선택에서 구하였으나, 그는 한계상황에 있는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그의 전인격과 전생명을 걸고 하는 선택을 창조적 선택이라고 하였다.
현실(現實, reality)은 비현실, 초현실 등과 대립되는 말로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몽환(夢幻) 등의 비현실에 대하여 사용될 때는 양자를 구획 짖는 기준이 제반 과학·인식론(認識論)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초현실 가까이 느껴지는 사실이라는 의미에서 구체적·개별적 경험이 현실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현실은 극한이어서 오히려 상대적·주관적이 되어, 이론적 추상(抽象)의 소산(所産)에 불과하게 되므로, 어떤 학적 이론구성에 의한 통합적 사실이 현실이라고도 생각된다. 현실은 또한 존재론(存在論)·논리의 용어로서 가능·우연·필연 등과 대비되는 양상개념(樣相槪念)의 하나이며, 더욱이 윤리적으로는 이상·이념과 대비하여 사용되는데, 양자의 어느 편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차이가 생긴다. 실존주의에서도 선택은 실존의 규정계기(規定契機)로서 중심적 문제가 된다.(두산 백과사전 참조)
우리 양업학교의 교육원리는 윌리암 글라서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의 ‘선택’도 자유의지와 밀접히 관계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필연적 법칙성과 팽팽히 대립각을 세울 때가 많다. 미성숙과 성숙의 차이 때문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자유는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양질의 선택일 때, 그 자유의지는 선택을 돕는 수단이 된다. 요즘 오늘의 세대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월남전 참전세대이다. 그 세대들은 앞만 보고 시키는 대로 또박 또박 살아 온 세대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통해 자라난 2세, 3세들은 너무나도 다르다. 오늘의 청소년 세대들은 부모님의 일방적인 간섭이나 강요를 거부한다. 또한 이기주의 성향으로 자라나 자기만 알고 제멋대로의 자유를 남용하고, 선택의 기준도 분명치 않아 생리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머무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것이 부모의 자녀 교육 책임이다. 이런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양업학교는 공교육의 문제의 대안으로 출발한 대안학교이다. 학생들에게 자유와 선택, 그리고 현실이란 단어와 밀접히 연관되어졌다. 공교육은 외적통제, 자극이론으로 학업성취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오늘 세대들은 점점 더 외적통제의 교육방법을 힘들어 하고, 이는 또 다른 양상의 문제점이다. 이에 양업학교는 내적통제의 이론을 그 대안으로 마련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처럼 우리도 일찍이 개인을 존중하고 그들 자신이 자유의지를 통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훈련해 왔다. 문제해결은 기다려주고 함께하고 성숙과 미성숙 사이에 눈높이를 조율하는 노력도 필요했다. 사실 학생들이 자유의지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그 자체가 더 힘든 문제였다. 늘 성숙의 기준인 필연적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이유 없이 반기를 들었다. 그것도 간섭이고 강요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학생 자신이 미래를 생각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와 철학적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당장만 생각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싶어 했다. 필연적 법칙을 수용하기까지는 설득력이 필요했고 시간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청소년들을 정언적 명법으로 인도할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현실은 미래를 향한 선택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현실은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열려져 있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현실을 놓고 자유의지를 통해 올바로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 올바른 선택을 통하여 성취감을 높여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을 양질의 기준에 대입하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려 할 때 양업학교 3년 생활은 빛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다면 언제나 자신에게 공허한 시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은 수시모집에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 바쁜 시기이다. 입시사정관에게 제출할 포트폴리오는 대안학교 교육철학이 녹아나야 한다. ‘대안학교’와 ‘자유’의 의미, 선택과 현실의 함수관계, 미성숙에서 성숙을 이룬 학습동력, 이런 요소를 자기의 삶 안에서 어떻게 조율하고 발전시켜 갔는지 하는 내용이 감동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녹아나야 한다. 학생들이 나는 양업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가 아니라, 그 경험이 바탕이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나를 발전시켰는가를 철학적으로 조명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