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무엇입니까?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342 | 작성일 : 2009년 9월 24일
이 학교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무엇입니까?
꼭 10년 전 이야기다. 양업의 기숙사에서 철부지들이 밤늦도록 재잘거리고, 심야에 안전지대인 여학생 화장실을 빌려 거한 술판을 벌리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나의 단잠을 깨운 그들을 찾아내고는 내 큰 손을 날려 벽에 짝짝 붙어버려 겁먹은 아이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마냥 즐기며 떠들던 철부지 아이들이었다. 그 때 나이가 17살이었으니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은 27살 믿음직한 청년들로 성장했다.
그 때 그 아이들은 나에게 학생이 술판을 벌린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졌다. 어른들은 곧잘 술판을 벌리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고 따져 묻는 아이들이었다. 그 일로 부모님을 소환했고 귀가조치를 명했다. 그 처벌을 알고는 그 놈들이 교장실로 찾아와 “부모님들은 왜 불렀느냐, 부모님을 부른다고 우리가 변할 것 같으냐? 두고 보자, 학교가 학생지도 능력이 부족해서 부모님을 부르기나 하고, 부모님을 부르면 우리가 말을 잘 들을 것 같으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제법 똑똑한 아이들이 심통을 부렸다.
그랬던 그들이 시간이 점점 흐르자, 그들은 “우리들만 즐기려고 공동체를 생각지 않고 술을 마신 것은 잘못입니다. 용서를 청합니다.”라는 대자보를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그렇게 차츰 태도가 달라지고 철이 들던 학생들이 방종 안에서 자발성을 키워가고 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이 학교에서 뭘 가르쳐 주었나요?”라고 따지듯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기뻤다. 나는 그들의 질문을 듣고, 야, 이제 아이들이 철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려준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애들아, 내가 너희 입에서 그런 질문이 쏟아져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니 너희들 철이 드는구나.” 하고 내심 기뻐했다.
그 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공부방에 들어가 무섭게 대입준비를 했다. 철이든 그 학생들이 2년간을 실컷 놀더니만 3학년 내내 열심히 공부했다. 그 중 한 학생이 이었는데 열심히 한 실적이 수능 400점 만점에 165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너무나 재미있게 보낸 결과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는 졸업을 했고 그 후 입시학원에 들어가려니 점수가 부족해서 그 학원에서 퇴자를 맞았다. 그러나 학원장에게 떼를 써 가까스로 학원에 들어갔는데, 그 해의 수능점수는 만점에 가까운 393점이었다. 동국대학교 이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수학과에 다니면서 군대생활을 마치면서 진로를 찾아 목표를 정했다. 경제 고시 정도로 여겨지는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에 도전을 하였고, 체중감량까지 하며 인간한계를 극복하더니 드디어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그 기쁜 소식을 부모님에게 전해 줄 때의 감사처럼 나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줄 때 그 감사의 인사도 버금갔다. “가능성과 자발성을 키워주신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학교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는 축하를 해 주면서 그 10년 전의 잊혀지지 않는 음주사건을 꺼냈다. “당시 나한테 큰 손으로 얻어터져 벽에 짝짝 달라붙던 생각나지?” 하자, 그 학생은 금방 알아차리고 완전히 넘어가듯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다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인데 그 때는 그놈들이 어찌나 힘들었는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자유, 방종, 그리고 얻어낸 값진 자발성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당히 서 있는 어른이 된 그 학생이 무척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학교교육철학을 이룬 좋은 본보기로 훌륭한 양업인으로 기록해두고자 한다.
꼭 10년 전 이야기다. 양업의 기숙사에서 철부지들이 밤늦도록 재잘거리고, 심야에 안전지대인 여학생 화장실을 빌려 거한 술판을 벌리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나의 단잠을 깨운 그들을 찾아내고는 내 큰 손을 날려 벽에 짝짝 붙어버려 겁먹은 아이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마냥 즐기며 떠들던 철부지 아이들이었다. 그 때 나이가 17살이었으니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은 27살 믿음직한 청년들로 성장했다.
그 때 그 아이들은 나에게 학생이 술판을 벌린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졌다. 어른들은 곧잘 술판을 벌리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고 따져 묻는 아이들이었다. 그 일로 부모님을 소환했고 귀가조치를 명했다. 그 처벌을 알고는 그 놈들이 교장실로 찾아와 “부모님들은 왜 불렀느냐, 부모님을 부른다고 우리가 변할 것 같으냐? 두고 보자, 학교가 학생지도 능력이 부족해서 부모님을 부르기나 하고, 부모님을 부르면 우리가 말을 잘 들을 것 같으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제법 똑똑한 아이들이 심통을 부렸다.
그랬던 그들이 시간이 점점 흐르자, 그들은 “우리들만 즐기려고 공동체를 생각지 않고 술을 마신 것은 잘못입니다. 용서를 청합니다.”라는 대자보를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그렇게 차츰 태도가 달라지고 철이 들던 학생들이 방종 안에서 자발성을 키워가고 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 이 학교에서 뭘 가르쳐 주었나요?”라고 따지듯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기뻤다. 나는 그들의 질문을 듣고, 야, 이제 아이들이 철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려준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애들아, 내가 너희 입에서 그런 질문이 쏟아져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니 너희들 철이 드는구나.” 하고 내심 기뻐했다.
그 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공부방에 들어가 무섭게 대입준비를 했다. 철이든 그 학생들이 2년간을 실컷 놀더니만 3학년 내내 열심히 공부했다. 그 중 한 학생이 이었는데 열심히 한 실적이 수능 400점 만점에 165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너무나 재미있게 보낸 결과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는 졸업을 했고 그 후 입시학원에 들어가려니 점수가 부족해서 그 학원에서 퇴자를 맞았다. 그러나 학원장에게 떼를 써 가까스로 학원에 들어갔는데, 그 해의 수능점수는 만점에 가까운 393점이었다. 동국대학교 이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수학과에 다니면서 군대생활을 마치면서 진로를 찾아 목표를 정했다. 경제 고시 정도로 여겨지는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에 도전을 하였고, 체중감량까지 하며 인간한계를 극복하더니 드디어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그 기쁜 소식을 부모님에게 전해 줄 때의 감사처럼 나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줄 때 그 감사의 인사도 버금갔다. “가능성과 자발성을 키워주신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학교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는 축하를 해 주면서 그 10년 전의 잊혀지지 않는 음주사건을 꺼냈다. “당시 나한테 큰 손으로 얻어터져 벽에 짝짝 달라붙던 생각나지?” 하자, 그 학생은 금방 알아차리고 완전히 넘어가듯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다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인데 그 때는 그놈들이 어찌나 힘들었는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자유, 방종, 그리고 얻어낸 값진 자발성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당히 서 있는 어른이 된 그 학생이 무척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학교교육철학을 이룬 좋은 본보기로 훌륭한 양업인으로 기록해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