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모범생이 먼저 진정한 부활을 준비해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468 | 작성일 : 2010년 3월 31일

‘교만한 모범생’이 먼저 진정한 부활을 준비해야

 우리 곁에 봄은 우수를 지낸 그 만큼 와 있다. 어느 생명이고 처절한 죽음을 통과해야 생명의 부활이 오는데, 맹위를 떨친 겨울 덕분에 금년엔 제대로 된 봄의 축제가 기대된다.
  신앙인으로 오랜 세월 예수님의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고 이루신 십자가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헤아리지 못해 어설픈 봄처럼 엉거주춤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 사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상의 삶을 연속적으로 정확히 살피면서 회심(悔心)과 회개(悔改)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회개와 회심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흔히들 자신을 흠잡을 데가 전혀 없다고 하는 ‘모범적이라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자기의 내면을 보지 못한 채 자기가 만든 모범의 잣대만으로 상대방을 훈계하고 설교하려들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 중에 ‘교만의 죄’는 누구도 구원받지 못할 중죄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회심,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하면서도 남에게 정직함을 강요할 뿐이다.
  이와 반대로 ‘모범적인 사람들’ 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공적인 죄인’은 자신의 죄를 아파하면서 철저히 하느님의 거울에 자기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회개와 회심을 통해 하느님께로 회귀하며 명품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 결국 의인(義人)으로 자처하는 ‘모범적인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로부터 제외될 때, ‘공적인 죄인들’은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부활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교만한 모범생들’은 엄밀하게 살펴보면 ‘공적 죄인’을 끝까지 구원받지 못할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일 외에는 아무에게도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교만한 모범생과 공적 죄인 중 누가 더 많아야 하는 곳일까? 교회는 인간 구원을 위해 있고, 공적 죄인에 대하여 사랑과 배려로 보살핌이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교만한 모범생들’의 목소리가 높아만 가고 ‘공적인 죄인들’이 공동체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들 외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면 교만한 모범생들이 외쳐대는  말 그대로 교회가 죄인을 단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모범생의 집합소라면 어떨까? 그건 교회의 본 모습이 아닐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닮아 ‘어떻게 하면 공적죄인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가에 큰 관심과 해결 방법을 찾아주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주변엔 미혼모의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아이들은 무지한 성인들로부터 빚어진 결과들이다. 그들은 아무 잘 못도 없이 태어난다. 그들은 태어나 자라며 사랑이 부족하여 생겨난 문제 행동들 때문에 교만한 모범생들로부터 질시와 손가락질로 단죄 받는다.
  교회를 이루는 신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들을 대하고 단죄했다면, 사순절 내내 우리도 회개하고 회심하여 억울한 십자가도 기꺼이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닮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범생들로부터 질시와 손가락질 받은 창녀와 세리들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교만한 모범생들이 약삭빠르게 이용하고 버린 억울한 십자가를 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따라서 죄의 원인인 교만한 모범생이 먼저 회개하고 회심하여 진정한 부활을 누릴 수 있도록 사순절을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교회공동체가 바라는 부활은 엉거주춤한 부활이어서는 안 된다. 지난겨울처럼 맹위를 떨친 혹한을 견디어 낸 생명처럼 될 때에 비로소 진정한 부활을 이루어 낼 것이다. 적어도 교만한 모범생이 진정한 부활을 노래할 때에야 비로소 교회 전체가 진정한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 사순절에 기도, 단식, 희생 등을 많이 해야 한다. 사순시기, 모든 신앙인들은 십자가와 죽으심으로 생명을 이루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고, 나 자신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진정한 부활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서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향해 귀향하는 공적죄인 ‘작은 아들’의 회심과 진정한 부활을 보고 기뻐해야 할 형이지만, 동생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신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교만한 모범생 ‘큰아들’의 모습이 세상에 만연한데, 교회만이라도 이런 모습이 아니길 바래본다. 고질적인 모범생이 지닌 교만병이 세상에 만연한데 이번 사순시기에 교회만이라도 깨끗이 청소해버리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