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음속에 새롭게 태어나는 성탄절을 바라며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54 | 작성일 : 2010년 12월 13일

가난한 마음 속에 새롭게 태어나는 성탄절을 바라며

 네팔 북동부 ‘랑탕’ 4500고지를 40명의 1학년 학생들과 트레킹을 하고 돌아왔다. 청정한 겨울 하늘, 은하계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보석처럼 촘촘히 박혀 빛나는 별들에 반했다. 학생들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아름다운 별밤을 바라보며 산 안내자들인 셀퍼들과 밤새껏 불을 지피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냈다.
 학생들과 함께한 12박의 네팔 세상보기! 이는 분명 여행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는 인성과 창의를 위한 세상보기였다. 인프라가 잘 조성된 내 나라 대한민국, 그래서 경제활동도 왕성하다. 잘 꾸며진 국제공항, 건강한 피돌기처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풍부한 전력, 통신의 발달, 등 풍요로움에 중독된 우리 학생들이다. 가난, 절약, 존중과 배려, 생명의 존귀함, 행복 등 상실된 가치를 살려보려 외쳐 보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관념어에 불과할 뿐이다. 청소년들은 풍요 속에 빈곤처럼 무엇인가 부족하면 즉시 불평을 한다. 엄동에 반팔입고 돌아다니면서 난방 온도 최대로 올려 달라 아우성친다. 그런 생활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국민소득 300불, 가난한 나라 네팔을 만나게 했다. 그곳은 초겨울인데 호텔은 난방이 안 되고, 전력이 부족해 밤에는 무조건 자야 했다. 학생들은 “따뜻한 목욕물 틀어줘요. 추워서 잠이 안와요.” 라며 불평을 터트렸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7일간의 트레킹을 하면서 에베레스트 산자락에 가난한 자연과 사람들을 만났다. 순수한 그들과 동화되어 서로 친구가 되었다.
 값진 시간 동안 우리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셀퍼들이 학생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트레킹하며, 힘들지만 학생들에게 밥을 지어 주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며 산을 올랐었다. 그들이 배푼 배려와 존중, 다정한 미소는 우리 마음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불평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고는 다시 수도 카드만두로 돌아 온 학생들은 소화해낸 일정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물질의 정도가 행복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해요. 짜증도 낼 법도 한데, 그들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고 함께했어요. 언제나 모두가 환하게 웃어 보여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오고 싶어요. 다음에는 랑탕이 아닌 안나푸르나를 만나고 싶어요. 생명이 서로 공존하고 각각의 생명이 목적으로 살아가요.” 학생들은 연신 즐거운 표정으로 소감을 발표하고 있었다. 
 움푹 팬 신작로, 트래픽이 걸린 지루한 차량행렬, 천 길 낭떠러지를 끼고 가파르게 굽이굽이 힘겹게 오르는 차량들, 경제적으로 최빈국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최고 부자였다.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아는 부유하고 행복한 나라임을 학생들은 자각했다. 학생들은 “대한민국은 불평 많고 교만하며, 남을 무시하고, 본질의 내용을 몰라 헤매며, 가난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속화된 가치들로 무성합니다.” 라면서 생명 살리기 한다고 끊임없이 파헤치고, 잘 정돈되고 곧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라, 자연 파괴로 생명들이 신음하는 깊은 상흔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는 “네팔은 모든 동물들이 인간과 더불어 생명의 똑같은 한 부분으로 목적이 되어 살아갑니다. 모든 생명들이 조금도 위협받지 않고 자기 목적대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행복임을 배웠습니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2010년 예수님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엄동에 온기가 부족하고 썰렁하기 그지없는 시골 성당에 다녔지만, 그 때의 신자들의 가난함 속에 피어나는 따스한 성탄절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즐겁고 행복했던 성탄의 의미는 이제 물질적 풍요로 그 의미가 퇴색하여 겉만 살아있는 세상이 되어 있다. 나는 이번 네팔에서의 시간을 통해 그동안 잃어버린 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찾았다.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포장되고, 거품으로 위장된 부의 욕심으로 가려진 혼탁한 마음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난함의 의미를 되찾는 것이 이번 성탄에 누리는 큰 축복이다. 우리 학생들이 처음엔 “교장신부님, 왜 가난한 나라, 그 곳으로 세상보기를 떠나나요?” 라며 내키지 않듯 부정적인 마음이었지만, 세상보기를 마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내년에도 그곳으로 또 가요.” 라며 행복해 한다. 그들은 이번 일로 중요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얼마만큼 본 듯하다. 학생들은 부족할 때라도 아무 불평 없이 살아갈 것을 서로가 다짐하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부자가 되어 있고 기쁜 성탄을 맞이하고 있다.
 2010, 예수님의 성탄 속에 진정한 가난함의 의미가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풍요라는 중독에 빈곤으로 신음하는 모든 생명이 구유에 누우신 가난의 아기 예수님을 닮아 행복으로 살아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