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사람인 고 김수환 추기경님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92 | 작성일 : 2009년 2월 27일
“가장 큰 사람”인 고(故) 김수환 추기경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이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사목모토이다. 그분은 주님을 당신의 목자로 세우시고, 질곡의 골짜기를 갈 때라도 두려움 없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사셨다. 그리고 임종을 준비하면서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고맙습니다.’는 하느님께 드리는 인사이고, ‘서로 사랑하세요.’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고마움의 인사였다.
추기경님은 장례미사가 봉헌되는 시간까지 성당 제단 앞에 정갈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으며, 그 분 곁에는 그 분을 추모하는 애도의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례미사가 끝나자, 그분이 왜 그리도 황급히 떠나셨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떠나시는 길이 왜 그리 섭섭하고 슬프던지 눈물이 자연스레 흘렀다. 어린이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시던 그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 아마도 그 모습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 그랬던 것 같다.
고인께서 묘원에 묻히던 때, 문득 성전에서 구세주 예수님을 뵙기를 간절히 고대하던 시메온 생각이 떠올랐다. 일생을 성전에서 봉사하며 구세주 탄생을 볼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살아 온 시메온이 급기야 아기 예수님을 손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2. 29) 묘원에 묻힌 추기경님은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같았다. “주님 이제야 말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죽음을 보며 하느님께 그런 인사를 드렸을 것이다.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말 속에 그 깊은 뜻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분께서 머문 무덤을 바라보며 모두들 상심에 찬 모습을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예수님을 잃은 제자들처럼 모두는 허전하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 때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렸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셔서 상심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대로 여러분 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16.7)이르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므로 더 이상 주검을 애통해 해서는 안 됨을 당부하신 말씀이었다.
“갈릴래야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행전 1,11)라는 말씀처럼 비록 고(故) 김 추기경님의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그 분은 영원히 이 땅에서 부활할 것이다. 그 분이 예수님의 삶을 사신 것 같이 이제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할 때이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은, 그 분이 섬기고 믿었던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남겨주신 사랑의 계명이었다. “십자가가 싫어 제자들끼리 서로 높은 자리 놓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아니라 종이 되고, 낮은 자 되어 섬기는 삶을 사는 것, 꼴지의 삶을 선택하는 것”(마르9.30-37 참조) 이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다.
우리 곁에 항상 살아계실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추기경님은 “가장 큰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사랑하는 윤병훈 신부 올림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이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사목모토이다. 그분은 주님을 당신의 목자로 세우시고, 질곡의 골짜기를 갈 때라도 두려움 없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사셨다. 그리고 임종을 준비하면서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고맙습니다.’는 하느님께 드리는 인사이고, ‘서로 사랑하세요.’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고마움의 인사였다.
추기경님은 장례미사가 봉헌되는 시간까지 성당 제단 앞에 정갈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으며, 그 분 곁에는 그 분을 추모하는 애도의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례미사가 끝나자, 그분이 왜 그리도 황급히 떠나셨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떠나시는 길이 왜 그리 섭섭하고 슬프던지 눈물이 자연스레 흘렀다. 어린이처럼 환하게 웃어 보이시던 그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 아마도 그 모습을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 그랬던 것 같다.
고인께서 묘원에 묻히던 때, 문득 성전에서 구세주 예수님을 뵙기를 간절히 고대하던 시메온 생각이 떠올랐다. 일생을 성전에서 봉사하며 구세주 탄생을 볼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살아 온 시메온이 급기야 아기 예수님을 손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2. 29) 묘원에 묻힌 추기경님은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같았다. “주님 이제야 말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죽음을 보며 하느님께 그런 인사를 드렸을 것이다.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말 속에 그 깊은 뜻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분께서 머문 무덤을 바라보며 모두들 상심에 찬 모습을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예수님을 잃은 제자들처럼 모두는 허전하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 때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렸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셔서 상심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전에 말씀하신대로 여러분 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16.7)이르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므로 더 이상 주검을 애통해 해서는 안 됨을 당부하신 말씀이었다.
“갈릴래야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행전 1,11)라는 말씀처럼 비록 고(故) 김 추기경님의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그 분은 영원히 이 땅에서 부활할 것이다. 그 분이 예수님의 삶을 사신 것 같이 이제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할 때이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은, 그 분이 섬기고 믿었던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남겨주신 사랑의 계명이었다. “십자가가 싫어 제자들끼리 서로 높은 자리 놓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아니라 종이 되고, 낮은 자 되어 섬기는 삶을 사는 것, 꼴지의 삶을 선택하는 것”(마르9.30-37 참조) 이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다.
우리 곁에 항상 살아계실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추기경님은 “가장 큰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을 사랑하는 윤병훈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