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행동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790 | 작성일 : 2009년 7월 10일

섬뜩한 행동들

 학생들에게 낫을 주고 풀을 깎으라고 시켰다. 그런데 학생들은 풀은 깎지 않고 낙엽 교목의 껍질을 흉물스럽게 벗겼다. 그것도 360도 회전하며 위에서부터 아래로 1미터 정도의 껍질을 벗겨 놓은 것이다. 나무의 나뭇잎은 여름철 증산작용이 무성하기에 아마 순식간에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갑자기 그들이 무서웠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생각 없는 섬뜩한 행동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손의 부분들이 무참히 생명을 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손의 부분이 어디 부모 중 한 부분이 빈 것만이 아닐 것이다. 부모가 계시지만 부모 역할과 책임이 부재한 결손도 큰 결손이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의 대가족제도, 농촌의 자연친화적인 환경에 친밀하게 접하며 자란 생명과, 최첨단 과학시대에서 그 어떤 생명과도 친밀하게 접해보지 못하고 자기 방에서 삭막하게 자란 생명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일 게다. 즐비하게 들어 선 깡마른 아파트를 드나드는 자녀들은 ‘단세대’(부모도 일에 바빠 각자 지내고, 자녀들이 홀로 방치된 세대)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자기 방에 처박혀 살벌한 전자게임을 즐긴다. 오르지 게임중독에 걸려 생명을 죽이고 죽는 훈련과 잔악해진 습관성으로 섬뜩한 행동들을 여과 없이 꺼낸다. 부모가 직장에 나가 돈 번다는 이유로 홀로 집에 버려진 자녀들은 결손 아닌 큰 결손에 방치되고 이런 섬뜩한 행동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가족이라는 의미가 사라졌다. 한 집에서 지내나 잠만 자고 떠나는 가족들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밥도 모두 모여 나누지 못한다. 더 이상 식구도 아니다. 부부간에도 결손을 맛보아야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결손을 맛본다. 따듯한 온기도 느껴보려 애서 보지만 가족 간에 온기도 없다. 이 모두가 서로에게 결손이다.
 이런 자녀들이 자연친화적인 학교에 왔다. 생명들과 가까이, 친밀하게 만날 기회가 많다. 모두들 삼시 세 끼 한 솥에 밥을 먹는다. 서로 내 몫을 챙기려고 다투지 않는다.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며 밥을 나눈다. 선생님과 함께, 학생들 서로가 한 방에서 뒹굴며 잠을 잔다. 이렇게 하루 종일 온기를 느끼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가족처럼 지낸다. 우리 학생들은 시골학교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농경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생명과 부딪힌다. 그들은 생명을 배워가며 유순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행복해 한다. 삭막한 집보다 학교가 좋다는 학생들이다.
 섬뜩하게,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을 마구잡이로 대하던 1학년 몇 명의 학생들도 이 학교에서 한 가족이 되어 점차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것이고, 행복을 배워갈 것이다. 먼 훗날 이 행동을 꺼낸 학생들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이 글 한 편을 남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