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를 명품학교로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400 | 작성일 : 2010년 5월 24일
시골학교를 명품학교로
신록의 계절 5월, 봄의 생명이 출산하여 초록 옷을 차려 입고는 성장과 성숙을 향해 커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명을 춤추게 하는 풍광과 생명을 적셔주는 빗줄기는 생명과 관계를 맺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하며, 생명은 윤기를 더해간다. 이런 5월을 만끽하려 사람들은 여가를 갖기 위해 시골로, 시골로 줄을 잇고 찾아든다. 본래 학교 ‘schole'는 희랍어로 여가를 가진 자유인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오늘의 학교가 영어로 'school'이다. 사람들은 문명이 꽃핀 도심 속을 떠나 여가를 갖고 정신수양을 위해 이동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일에 취해 살다가 ‘도대체 인생목적이 뭐지? 행복이 아닐까?’ 라는 물음에 답을 얻고자 쉼없이 움직이고 있다. 아마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향한 진정한 동력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적이 끊긴 대부분의 시골학교는 모두가 졸고 있다. 나는 저 졸고있는 학교들이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꿨다. 출세를 향해 도심 속에서 신음하는 학생들이 도시에서 시골로 역류하리라는 소박한 꿈을 꿨다. 생명이 멈춰선 시골학교는 고라니가 나무 숲 사이를 오가며 뛰놀다가 목 축이러 강 따라 내려온 모습이 평화스럽다. 산비둘기, 꿩, 이름 모를 새들의 조화로운 노랫소리도 아름답고 산바람도 청청하고 신선하다. 이 아름다운 시골학교가 다시 학생들의 생명으로 힘차게 넘쳐나는 학교가 되길 꿈꿔본다.
우리들이 사는 5월의 산속 학교는 행복하고 아름답다. 우리 학교는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버이도, 선생님도, 부부들도 가정도 모두들 행복해 한다. 우리는 생명이 어우러져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도심 속에서 지쳐서 시골로 유학 온 학생들이 5월의 생명처럼 학생들이 활짝 웃었다. 산속의 5월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으뜸 피조물인 학생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건강하니 네가 보이고, 또한 우리도 보였다. 그렇게 살도록 변화를 가져다주는 동력은 ‘관계성’이었다. 하느님, 자연, 사람 그리고 나 사이의 관계성이 생명을 자라나게 한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은 여타의 생명 사이에 서로가 고맙고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언젠가 나는 일본 홋카이도의 나요로에 위치한 대안교육 장소인 ‘가정 학교’를 방문했다. 마침 겨울이어서 1미터 이상 쌓인 설경이 아름다웠지만, 27만㎡의 너른 학교터에 백년 이상의 원시림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학생들이 장작을 패서 밥을 짓고, 물을 끓여 목욕하고, 눈밭에서 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너른 대지의 학교는 전체 학생이 고작 53명이었는데, 그 학생들은 도심의 경쟁에서 지친 학생들이지만, 생명과의 관계성이 그들을 치유시켜주고 있었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유학 온 학생들은 생명의 관계성 안에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그곳 학교장은 나에게 “모두가 학교생활 반년이면 본래의 학교로 다 돌아갑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자연이 준 변화, 그 변화는 생명이 되는 큰 동력이었다.
요즘 우리 학생들은 공부만 하느라 터 무늬가 없다. 신록의 5월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변화를 의식할 기회가 없다. 일본의 ‘가정 학교’ 학생들이 부러운 것은 그들 마음속에 생명이 되는 터 무늬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하게 느껴진 것은 많은 것들과 관계성 안에 아름다운 터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 부러웠다. 대한민국 시골의 학교는 폐교가 되어 방치되고 흉물스럽다. 인적이 끊겼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꿔 본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수없는 학생들이 유학 오는 꿈 말이다. 내 자녀 내 고향 학교 보내기 운동이 아무리 외친다 해도 구호로는 부족하다. 명품이 될 수 있는 교육철학이 있고 브랜드가 있어 졸고 있고 침묵하는 흉물스런 시골학교 공간에 학생들이 몰려오는 대안교육공간으로 활용해 보라. 맛있다는 명품 식당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듣고 거리에 관계없이 차량에 날개를 달고 끝없이 찾아가지 않는가. 왜 시골학교를 명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버려둔 채 아이들이 대도시로 빠져나간다는 불평 섞인 이유를 다는가. 교육의 패러다임은 의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고 활력과 기쁨을 준다. 우리가 변화의 동력을 지닌 의미 있는 좋은 뜻을 갖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매너리즘이고 이를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신록의 계절 5월, 봄의 생명이 출산하여 초록 옷을 차려 입고는 성장과 성숙을 향해 커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명을 춤추게 하는 풍광과 생명을 적셔주는 빗줄기는 생명과 관계를 맺고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하며, 생명은 윤기를 더해간다. 이런 5월을 만끽하려 사람들은 여가를 갖기 위해 시골로, 시골로 줄을 잇고 찾아든다. 본래 학교 ‘schole'는 희랍어로 여가를 가진 자유인이 생활하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오늘의 학교가 영어로 'school'이다. 사람들은 문명이 꽃핀 도심 속을 떠나 여가를 갖고 정신수양을 위해 이동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일에 취해 살다가 ‘도대체 인생목적이 뭐지? 행복이 아닐까?’ 라는 물음에 답을 얻고자 쉼없이 움직이고 있다. 아마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향한 진정한 동력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적이 끊긴 대부분의 시골학교는 모두가 졸고 있다. 나는 저 졸고있는 학교들이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꿨다. 출세를 향해 도심 속에서 신음하는 학생들이 도시에서 시골로 역류하리라는 소박한 꿈을 꿨다. 생명이 멈춰선 시골학교는 고라니가 나무 숲 사이를 오가며 뛰놀다가 목 축이러 강 따라 내려온 모습이 평화스럽다. 산비둘기, 꿩, 이름 모를 새들의 조화로운 노랫소리도 아름답고 산바람도 청청하고 신선하다. 이 아름다운 시골학교가 다시 학생들의 생명으로 힘차게 넘쳐나는 학교가 되길 꿈꿔본다.
우리들이 사는 5월의 산속 학교는 행복하고 아름답다. 우리 학교는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버이도, 선생님도, 부부들도 가정도 모두들 행복해 한다. 우리는 생명이 어우러져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도심 속에서 지쳐서 시골로 유학 온 학생들이 5월의 생명처럼 학생들이 활짝 웃었다. 산속의 5월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으뜸 피조물인 학생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건강하니 네가 보이고, 또한 우리도 보였다. 그렇게 살도록 변화를 가져다주는 동력은 ‘관계성’이었다. 하느님, 자연, 사람 그리고 나 사이의 관계성이 생명을 자라나게 한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은 여타의 생명 사이에 서로가 고맙고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언젠가 나는 일본 홋카이도의 나요로에 위치한 대안교육 장소인 ‘가정 학교’를 방문했다. 마침 겨울이어서 1미터 이상 쌓인 설경이 아름다웠지만, 27만㎡의 너른 학교터에 백년 이상의 원시림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학생들이 장작을 패서 밥을 짓고, 물을 끓여 목욕하고, 눈밭에서 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너른 대지의 학교는 전체 학생이 고작 53명이었는데, 그 학생들은 도심의 경쟁에서 지친 학생들이지만, 생명과의 관계성이 그들을 치유시켜주고 있었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유학 온 학생들은 생명의 관계성 안에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그곳 학교장은 나에게 “모두가 학교생활 반년이면 본래의 학교로 다 돌아갑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자연이 준 변화, 그 변화는 생명이 되는 큰 동력이었다.
요즘 우리 학생들은 공부만 하느라 터 무늬가 없다. 신록의 5월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변화를 의식할 기회가 없다. 일본의 ‘가정 학교’ 학생들이 부러운 것은 그들 마음속에 생명이 되는 터 무늬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행복하게 느껴진 것은 많은 것들과 관계성 안에 아름다운 터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 부러웠다. 대한민국 시골의 학교는 폐교가 되어 방치되고 흉물스럽다. 인적이 끊겼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꿔 본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수없는 학생들이 유학 오는 꿈 말이다. 내 자녀 내 고향 학교 보내기 운동이 아무리 외친다 해도 구호로는 부족하다. 명품이 될 수 있는 교육철학이 있고 브랜드가 있어 졸고 있고 침묵하는 흉물스런 시골학교 공간에 학생들이 몰려오는 대안교육공간으로 활용해 보라. 맛있다는 명품 식당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듣고 거리에 관계없이 차량에 날개를 달고 끝없이 찾아가지 않는가. 왜 시골학교를 명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버려둔 채 아이들이 대도시로 빠져나간다는 불평 섞인 이유를 다는가. 교육의 패러다임은 의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고 활력과 기쁨을 준다. 우리가 변화의 동력을 지닌 의미 있는 좋은 뜻을 갖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매너리즘이고 이를 바라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