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평가와 학교서열화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27 | 작성일 : 2009년 4월 17일
학력평가, 학교 서열화
조화로운 질서로 행복해하는 삶, 거짓이 없는 신뢰로 미소 짓는 삶,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삶….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꿈꾸며, 각자 맡은 삶의 자리에서 작은 부분을 지키면서 전체를 위해 살아간다. 작은 부분, 이를 ‘기본’이라 하자. 기본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안의 기본이 제법 사회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재주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기본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이들 덕분에 우리의 세상은 건강한 문화가 형성하고, 국력이 향상되며,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
기본을 익히는 사회화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지난 10년 동안, 초. 중등의 교육정책은 교육과정 속에 인성교과를 확충하자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교육정책이 또 바뀌고 있어 혼란스럽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몰입식 영어교육에 대한 발언, 학력평가와 수능점수 공개, 학교서열화의 논란 등은 평안했던 의무교육학교 현장을 뒤집어 놓았다. 언젠가는 교육을 좀 여유를 갖고 목적중심으로, 내용중심으로 교육하자며 인성교과에 빛을 발하더니, 요즘은 다시 입시관련 과목에 기가 눌려 인성교육이 물러앉을 판이다. 입시관련과목의 학력평가 때문에 비관련 교과는 무시당해 의무교육의 목적이 크게 훼손될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교육의 기본이 되는 ‘인성교육’과 전문인이 되는 ‘지식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그러나 입시관련교과만을 강조하여 전 분야 교과를 통해 골고루 섭취될 ‘기본 지식’이 무시된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학력제고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나 학력이 꼭 입시관련과목만 학력인가. 평가와 수능결과에 따른 학교 서열화는 ‘기본을 바로 세우는 교육’을 포기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즉 미래지향적이고 성숙을 향한 발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국가교육이 일부 종교계 학교에서 실시하는 영성교육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인성교육만은 중요시 다뤄 전문인이 양성된다면 교육이 한층 더 빛이 나지 않겠는가. 몰입영어를 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정책에 대하여 일제히 교육을 망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왜곡된 교육의 본질에 대한 복구는 뒷전이고 여전히 실용교육만 강조한다면, 결국 “기본이 바로선 사회”의 꿈은 우리에게 그 만큼 멀어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이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면서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초점이 맞춰진다면, 양성된 엘리트도 기본을 몰라 대도(大盜)를 만드는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교육이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에 명제적 답을 분명히 담고 살아야 한다. 교육정책이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학생들은 오지선다형 중 하나의 조각난 지식을 찍기 위해서 불야성을 이루며 사는 모습은 참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대학가는 것만 좋아하지 교육에 관하여 솔직히 아는 것이 없다. 다만 귀 동량으로 불안해하며 교육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세할 뿐이다. 학부모는 그렇다고 치자. 정책 입안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은 오르지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과 성숙을 위해 일관성과 연계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교육철학도 없이 지도자 마음대로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식으로 교육정책을 바꿔서는 안 된다. 지도자들은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하며, 종합적 사고를 지닌 “철학이 있는 자”여야 한다. 철학적 사고 없이 실용성만 강조하는 교육정책은 국민 전체의 인생 후반부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교육의 정도(正道)는 언제나 전체를 향하는 데서 비롯된다. 학교교육이 경제논리와 실용성교육, 신자유주의에 내어 준다면, 언젠가는 수단에 놀아나고 ‘우리’라는 목적 전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중대한 손실이 어디 있겠는가. 경제대국인 일본은 입시관련교과보다 기본을 더 중요시하며 교육하지만 그들은 경제대국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교육만큼은 성급해서는 안 된다. 효율성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효과성만 쳐다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부분도 중요하게, 전체도 중요하게, 그래서 종합되고 완성되도록 쉼 없이 정진하는 것, 그것이 참교육을 향하는 길이다.
조화로운 질서로 행복해하는 삶, 거짓이 없는 신뢰로 미소 짓는 삶,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삶….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꿈꾸며, 각자 맡은 삶의 자리에서 작은 부분을 지키면서 전체를 위해 살아간다. 작은 부분, 이를 ‘기본’이라 하자. 기본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 안의 기본이 제법 사회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재주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산 사람들이다. 기본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이들 덕분에 우리의 세상은 건강한 문화가 형성하고, 국력이 향상되며,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
기본을 익히는 사회화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지난 10년 동안, 초. 중등의 교육정책은 교육과정 속에 인성교과를 확충하자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교육정책이 또 바뀌고 있어 혼란스럽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몰입식 영어교육에 대한 발언, 학력평가와 수능점수 공개, 학교서열화의 논란 등은 평안했던 의무교육학교 현장을 뒤집어 놓았다. 언젠가는 교육을 좀 여유를 갖고 목적중심으로, 내용중심으로 교육하자며 인성교과에 빛을 발하더니, 요즘은 다시 입시관련 과목에 기가 눌려 인성교육이 물러앉을 판이다. 입시관련과목의 학력평가 때문에 비관련 교과는 무시당해 의무교육의 목적이 크게 훼손될 위기에 놓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교육의 기본이 되는 ‘인성교육’과 전문인이 되는 ‘지식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그러나 입시관련교과만을 강조하여 전 분야 교과를 통해 골고루 섭취될 ‘기본 지식’이 무시된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학력제고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나 학력이 꼭 입시관련과목만 학력인가. 평가와 수능결과에 따른 학교 서열화는 ‘기본을 바로 세우는 교육’을 포기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즉 미래지향적이고 성숙을 향한 발전적인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국가교육이 일부 종교계 학교에서 실시하는 영성교육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인성교육만은 중요시 다뤄 전문인이 양성된다면 교육이 한층 더 빛이 나지 않겠는가. 몰입영어를 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 정책에 대하여 일제히 교육을 망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왜곡된 교육의 본질에 대한 복구는 뒷전이고 여전히 실용교육만 강조한다면, 결국 “기본이 바로선 사회”의 꿈은 우리에게 그 만큼 멀어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이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면서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초점이 맞춰진다면, 양성된 엘리트도 기본을 몰라 대도(大盜)를 만드는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교육이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에 명제적 답을 분명히 담고 살아야 한다. 교육정책이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학생들은 오지선다형 중 하나의 조각난 지식을 찍기 위해서 불야성을 이루며 사는 모습은 참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대학가는 것만 좋아하지 교육에 관하여 솔직히 아는 것이 없다. 다만 귀 동량으로 불안해하며 교육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세할 뿐이다. 학부모는 그렇다고 치자. 정책 입안자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교육정책은 오르지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과 성숙을 위해 일관성과 연계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교육철학도 없이 지도자 마음대로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식으로 교육정책을 바꿔서는 안 된다. 지도자들은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하며, 종합적 사고를 지닌 “철학이 있는 자”여야 한다. 철학적 사고 없이 실용성만 강조하는 교육정책은 국민 전체의 인생 후반부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교육의 정도(正道)는 언제나 전체를 향하는 데서 비롯된다. 학교교육이 경제논리와 실용성교육, 신자유주의에 내어 준다면, 언젠가는 수단에 놀아나고 ‘우리’라는 목적 전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중대한 손실이 어디 있겠는가. 경제대국인 일본은 입시관련교과보다 기본을 더 중요시하며 교육하지만 그들은 경제대국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교육만큼은 성급해서는 안 된다. 효율성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효과성만 쳐다보아서도 안 될 것이다. 부분도 중요하게, 전체도 중요하게, 그래서 종합되고 완성되도록 쉼 없이 정진하는 것, 그것이 참교육을 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