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강생과 성체성사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57 | 작성일 : 2009년 7월 10일

예수님의 강생과 성체성사

 “왜 하느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취하고 싶으셨을까? 왜 무한한 힘을 가진 하느님께서 자신을 유한하게 만들어 역사와 인간의 몸속으로 한계를 지으셨을까? 왜 강생하셨나?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어느 한밤중에 네 살배기 아이가 놀라 잠에서 깼다. 주위는 온통 칠흑처럼 어두워 귀신이나 괴물이 나타날 것 같았다. 아이가 울며 부모 방으로 달려가자, 엄마는 전등을 켜고 아이를 설득했다. “아가야 조금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이 방에 계시 단다.”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전 지금 더듬고 만질 수 있는 피부를 가진 누군가가 필요해요.”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강생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분은 육체를 취하셨다. 어린아이인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존재를 필요로 하기에,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은 또한 어디에도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본 것을 믿는다. 우리는 무형의 천사가 아니다. 우리는 감각의 세계에서 참으로 감각을 가진 피조물이다. 우리는 오관을 통해 세상을 감지하며 함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배우고 소통하며, 세상에 자신을 연다. 하느님이 강생하시는 이유는 감각적인 피조물인 우리에게 더듬고 만지는 살갗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제 빵 한 조각이 되셨고 시원한 냉수 한잔이 되신다. 주님은 저를 위해 겸손하게 빵이 되셨고 물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단 한 번 강생하심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강생의 계속성이 예수님의 33년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의 몸이 우리 가운데에 계속된다. 바로 성체성사를 통해 강생이 계속된다. 즉 예수와 성체성사, 그리고 신앙공동체를 통해 강생은 계속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 신자와 단순히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유신론자나 그리스인이나 하느님을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강생하신 하느님을 믿는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쉽게 말해, 유신론자들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믿듯이 그리스도인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또한 지상에서 인간 안에 육체적으로 현존한다. 유신론자의 하느님은 초월적이다.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초월적이고 존재의 근원이시지만 지상에 육체적 몸을 지니고 계신다.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가시적이고 들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만질 수 있는 피부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육 안에 들어오신 분이며 구체적인 살을 가진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말은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모든 면에서 크게 영향을 끼친다.” (로널드 롤하이저,「聖과 性의 영성」,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인용)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다. 성체성사로 오시는 하느님의 강생, 이 강생의 연속성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다 더 생생하게 피어나게 하며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놀라운 신앙의 발견이라 여겨져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