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겁을 내느냐? (마르4,40)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어린 아들은 모처럼 시원한 바다를 보자 장난삼아 발을 담그며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어 잔잔한 파도가 출렁거리자 조금 더 한 발을 옮기던 아이는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화들짝 놀란 어린 아들은 “아빠!”하고 소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 때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손을 내밀어, “응 괜찮다. 나 여기 있어. 걱정 마!”하고 대답했다. 안전망을 친 아빠는 어린 아이를 지켜보며 “어서 더 들어가 보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하고 말했다. 아빠를 확인하는 순간 두려움에 찬 어린 아들의 얼굴에는 금세 안도의 표정이 그려졌고, 아이는 계속해서 물속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다.
어린아이는 위급한 상황에 있었고 자기의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때 매우 두려웠다. 그래서 아빠에게 위급상황을 알리자, 그 즉시 “나 여기 있다, 안심하여라.” 라는 아빠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금방 편안해져서 자신이 할 일을 계속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마치 이 어린아이와 같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태 28,20)고 말씀하신 주님을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하느님을 찾는다.
‘야훼’, ‘임마누엘’의 본뜻은 “나 여기 있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위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예로 복음을 묵상해 보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오르셨다. 그 때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찼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깨어나시어 “잠잠하고 조용하여라.”라고 바람을 꾸짖고 호수더러 명령하시자 바람이 멎고 아주 조용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4,35-40)”
바닷가를 걷다가 위기를 만난 어린아이가 함께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빠’하고 소리친 것처럼 위기를 만난 제자들도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잠만 주무세요. 고물을 베개 삼아 어떻게 나 몰라라 하십니까?”하고 소리쳤다. 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아버지처럼 예수님도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잠에서 깨어나신 예수님은 “나 여기 있어. 걱정 말고 노를 저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거센 돌풍 같은 두려움을 잠재우고 평상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예수님, 그분은 주무시거나, 침묵하거나, 사랑을 외면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4,40) 이 복음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항상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 여기 있다.”,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분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어린 아들은 모처럼 시원한 바다를 보자 장난삼아 발을 담그며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어 잔잔한 파도가 출렁거리자 조금 더 한 발을 옮기던 아이는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화들짝 놀란 어린 아들은 “아빠!”하고 소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 때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손을 내밀어, “응 괜찮다. 나 여기 있어. 걱정 마!”하고 대답했다. 안전망을 친 아빠는 어린 아이를 지켜보며 “어서 더 들어가 보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하고 말했다. 아빠를 확인하는 순간 두려움에 찬 어린 아들의 얼굴에는 금세 안도의 표정이 그려졌고, 아이는 계속해서 물속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다.
어린아이는 위급한 상황에 있었고 자기의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때 매우 두려웠다. 그래서 아빠에게 위급상황을 알리자, 그 즉시 “나 여기 있다, 안심하여라.” 라는 아빠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금방 편안해져서 자신이 할 일을 계속한다. 우리 신앙인들은 마치 이 어린아이와 같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태 28,20)고 말씀하신 주님을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하느님을 찾는다.
‘야훼’, ‘임마누엘’의 본뜻은 “나 여기 있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위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예로 복음을 묵상해 보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호수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오르셨다. 그 때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찼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깨어나시어 “잠잠하고 조용하여라.”라고 바람을 꾸짖고 호수더러 명령하시자 바람이 멎고 아주 조용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4,35-40)”
바닷가를 걷다가 위기를 만난 어린아이가 함께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빠’하고 소리친 것처럼 위기를 만난 제자들도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잠만 주무세요. 고물을 베개 삼아 어떻게 나 몰라라 하십니까?”하고 소리쳤다. 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아버지처럼 예수님도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잠에서 깨어나신 예수님은 “나 여기 있어. 걱정 말고 노를 저어라”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거센 돌풍 같은 두려움을 잠재우고 평상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예수님, 그분은 주무시거나, 침묵하거나, 사랑을 외면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4,40) 이 복음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항상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 여기 있다.”,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분임을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