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142 | 작성일 : 2009년 11월 10일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
요즘 구석구석 ‘대안 찾기’에 바쁘다. ‘대안은 무엇인가?’ 라는 제하의 글이 신문을 도배하면서 대안을 찾아보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의적절한, 시원한 대안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10년 전, 교육의 대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안학교가 출발했다. 당시는 ‘공교육의 대안’이기보다는 공교육현장에서의 골칫거리 학생을 모아두고 보자는 ‘협의의 대안’이었다. 다시 말해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선 학교의 골칫거리인 문제아, 부적응학생들을 따로 한 곳에 모아 두는 것이 대안교육이었다. 그 당시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교육주체가 교육철학, 교육원리, 교육목표 교육과정 등을 성취할 교육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대안학교가 그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교육’의 개념 보다는 ‘교화’라는 수용의 개념이 더 적절했다. 솔직히 ‘교육’을 위한 대안학교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안학교도 학교이기에 ‘교화의 장’이 아니라 성장과 성숙을 위한 ‘교육의 장’이였기 때문이었다.
‘교육’에 도전하기 위해 모든 교사는 3년 동안 퇴근을 반납했었다. 철부지 꾸러기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철들기를 기다려주며, 그들의 눈높이로 대해주면서 사랑으로 보듬어주었다. “너희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웃기고 있네.” 하며 빈정대던 학생들도 시간이 제법 지났을 때는, “어, 정말 우리를 사랑하네!” 라고 말하면서, 선생님들에게 다가왔다. 상처받았던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제법 건강하게 쑥쑥 자라나 졸업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졸업생이 된 그들은 대안학교가 ‘좋은 학교(Quality School)’라며 전국을 향해 소문을 내는 나팔수가 되곤 한다.
대안학교가 공교육의 대안이라며 “좋은학교"라는 입소문에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나고 7년이 지날 무렵, ‘수용’ 개념이 ‘교육’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잘못 인식된 협의의 대안교육이 공교육의 대안이 될 만큼 광의의 대안교육으로 발돋움했다. 그 결과, 산골 마을의 학교는 학생지원자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했지만, 그 결과 학교의 신뢰도는 더욱 탄력을 받고 높아져 갔다.
지난 10월 7일, 2010학년도 신입생 원서 접수 결과, 신입생 전형은 5.5대 1의 경쟁률로 나타났다. 공교육 현장이 싫다며 수재와 영재들이 시끌벅적하게 산골 학교로 모여들었다. 이 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존중받으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왔고, 학부모는 사교육에 매달리는 일반 학부모처럼 교육에 맹목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면서 대안을 찾아서 왔다고들 한다. 머물고 싶고 다니고 싶은 행복한 학교를 끊임없이 찾다보니, 요즘 비인가 대안학교들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일까, 도심의 학생들이 시골대안학교로 유학을 가는 모습도 이제 예사롭지 않다.
대안교육에서 얻어 낸 결실은 이렇다. 인성교육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교육목표를 위해 수많은 교육적 경험을 갖게 했고, 학생들의 교육적 경험은 자신의 자발성이란 에너지를 갖게 했으며, 자기 통제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목표를 향한 자율적인 인간을 키워낸 것이다. 누가 학습을 강제해서 공부방으로, 새벽녘까지 하게 한 것이 아니다. 자발성으로 꿈을 갖게 한 결실이 각 분야에서 양질의 학업성취도를 이루어 냈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놓고 공교육은 설립 의도가 변질되었다고 비난하듯 말을 꺼낸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더 문제이다. 대안학교는 학교이고, 특히나 학생들이 좋은 학교라고 선택할 때야 만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대안학교의 변질을 운운하기 전에, 왜 사람들이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지에 대해 궁금해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건 교육의 주체자들이 더 이상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교육에 임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이는 더 나아가 교육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안학교! 말 그대로 학교에 대한 대안이었고, 그러한 대안학교가 설립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교육 수요자들에게 선택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안교육이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네 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많이들 있겠지만,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그 물꼬를 틀어 보는 건 어떨까.
요즘 구석구석 ‘대안 찾기’에 바쁘다. ‘대안은 무엇인가?’ 라는 제하의 글이 신문을 도배하면서 대안을 찾아보지만, 예나 지금이나 시의적절한, 시원한 대안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10년 전, 교육의 대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대안학교가 출발했다. 당시는 ‘공교육의 대안’이기보다는 공교육현장에서의 골칫거리 학생을 모아두고 보자는 ‘협의의 대안’이었다. 다시 말해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일선 학교의 골칫거리인 문제아, 부적응학생들을 따로 한 곳에 모아 두는 것이 대안교육이었다. 그 당시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교육주체가 교육철학, 교육원리, 교육목표 교육과정 등을 성취할 교육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대안학교가 그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교육’의 개념 보다는 ‘교화’라는 수용의 개념이 더 적절했다. 솔직히 ‘교육’을 위한 대안학교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안학교도 학교이기에 ‘교화의 장’이 아니라 성장과 성숙을 위한 ‘교육의 장’이였기 때문이었다.
‘교육’에 도전하기 위해 모든 교사는 3년 동안 퇴근을 반납했었다. 철부지 꾸러기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이 철들기를 기다려주며, 그들의 눈높이로 대해주면서 사랑으로 보듬어주었다. “너희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웃기고 있네.” 하며 빈정대던 학생들도 시간이 제법 지났을 때는, “어, 정말 우리를 사랑하네!” 라고 말하면서, 선생님들에게 다가왔다. 상처받았던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제법 건강하게 쑥쑥 자라나 졸업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졸업생이 된 그들은 대안학교가 ‘좋은 학교(Quality School)’라며 전국을 향해 소문을 내는 나팔수가 되곤 한다.
대안학교가 공교육의 대안이라며 “좋은학교"라는 입소문에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나고 7년이 지날 무렵, ‘수용’ 개념이 ‘교육’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잘못 인식된 협의의 대안교육이 공교육의 대안이 될 만큼 광의의 대안교육으로 발돋움했다. 그 결과, 산골 마을의 학교는 학생지원자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했지만, 그 결과 학교의 신뢰도는 더욱 탄력을 받고 높아져 갔다.
지난 10월 7일, 2010학년도 신입생 원서 접수 결과, 신입생 전형은 5.5대 1의 경쟁률로 나타났다. 공교육 현장이 싫다며 수재와 영재들이 시끌벅적하게 산골 학교로 모여들었다. 이 학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존중받으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왔고, 학부모는 사교육에 매달리는 일반 학부모처럼 교육에 맹목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면서 대안을 찾아서 왔다고들 한다. 머물고 싶고 다니고 싶은 행복한 학교를 끊임없이 찾다보니, 요즘 비인가 대안학교들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일까, 도심의 학생들이 시골대안학교로 유학을 가는 모습도 이제 예사롭지 않다.
대안교육에서 얻어 낸 결실은 이렇다. 인성교육을 통한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교육목표를 위해 수많은 교육적 경험을 갖게 했고, 학생들의 교육적 경험은 자신의 자발성이란 에너지를 갖게 했으며, 자기 통제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목표를 향한 자율적인 인간을 키워낸 것이다. 누가 학습을 강제해서 공부방으로, 새벽녘까지 하게 한 것이 아니다. 자발성으로 꿈을 갖게 한 결실이 각 분야에서 양질의 학업성취도를 이루어 냈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놓고 공교육은 설립 의도가 변질되었다고 비난하듯 말을 꺼낸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가 더 문제이다. 대안학교는 학교이고, 특히나 학생들이 좋은 학교라고 선택할 때야 만이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대안학교의 변질을 운운하기 전에, 왜 사람들이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를 다니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지에 대해 궁금해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건 교육의 주체자들이 더 이상 교육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교육에 임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이는 더 나아가 교육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안학교! 말 그대로 학교에 대한 대안이었고, 그러한 대안학교가 설립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교육 수요자들에게 선택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안교육이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네 교육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많이들 있겠지만,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그 물꼬를 틀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