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회고하며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41 | 작성일 : 2008년 3월 22일
10주년을 회고하며
“우리들이 버린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위한 학교, 안 됩니다!” 교육계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절망적인 말을 들으며, 2년 동안 학교 태어남의 산고를 겪은 후 땅을 판 후 기초를 놓고 한 층, 한 층 건물을 이루어 가길 몇 해, 철들지 않은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건물을 이루던 몇 해, 참 힘들고 어려웠는데 벌써 개교 10주년이 되었다.
밥 먹을 숟가락 하나, 퍼 담을 그릇하나 변변한 것 없이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지금은 추억으로 아름답지만 그 때는 왜 그리 서럽고 어설프고 배가 고팠던지 무척 가난했다. 거지, 깡통 들고 서 있으면 담뿍 채워주던 정감 나던 나의 어린시절처럼 우리도 본당을 서성이면서 밥그릇 풍성히 채워 얻던 시절이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왜 그리 즐겁고 기뻤던지. 사실 지난 시간들은 암이 걸릴 것만 같았다. 숱한 사건 사고들,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다. 학교가 개교를 하고 6개월 되던 때의 일이다. 만수위가 되어 힘차게 내려가던 앞 냇물을 헤엄쳐 건너간다며 폼 잡던 아이들, 급물살에 파묻혀 이미 죽었을 아이들인데 냇가 한 가운데 섬처럼 드러난 모래톱 위로 기어올라 살아났던 기적, 지금도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들이지만 죽지는 않고 살아있다.
이러한 악재의 소식은 “그래 네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하는 나를 향한 빈정거림과 함께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만일 그놈들이 헤엄치다 익사해 실종 되어 버렸다면, 학교는 지금 더 이상의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너희가 우릴 사랑한다고?’라며 코웃음을 치던 아이들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나 보자!’며 선생님들을 매일 시험이라도 하듯 골탕 먹이던 사건들 후에, 그들은 우리를 인정하고 우리를 존중해갔다. 나는 담배도 맘껏 태우도록 허용했으며 술도 때론 함께 먹었다. 그들에게 즐거움이라고는 책이 아닌 담배, 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들로부터 얻어터지고 상납하고, 절절맸던 후배들···. 선배들이 졸업하고 조금 나아지고, 또 선배들이 졸업하고 조금 나아지고, 그러길 몇 해가 지날 무렵, 그들 스스로가 암병동 같은 ‘흡연터’를 없애버렸다. 교사들이 인내하기 어렵다고 성가셔서 흡연터를 강제로 없애버렸다면, 교사와 학생들이 팽팽히 평행선을 그었을 것이다. 그들이 경험한 고통들로 철이 들어 건강한 학교가 필요하다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을 때 그 암실을 없애버린 것이었다. 이제 누가 보아도 ‘폭력이 없는 학교’, ‘무단결석이 없는 학교’, ‘낙오자가 없는 학교’인 ‘좋은 학교 양업’이 되었다.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는 교훈이 그 실효를 거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자기를 존중했으며 남을 배려하는 학생”이 되어갔다. “좋은 선택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면 그 응분의 책임을 지는 학생”이 되어갔다. “인성교육의 토양은 그들에게 학업성취도를 높이며 살아가는 당당하고 훌륭한 학생”들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입학 경쟁율이 5대 1을 넘고 있음이 그를 말해준다.
우리는 오래도록 인내하며 학생들을 기다려 주었다. 그 덕분에 그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우리가 공교육 교사들처럼 욕심도 생겨나고 조급해져가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됨을 알지만 학부모가 더 욕심을 부린다. 솔직히 옛날처럼 재미가 없다. 사실 내 자신이 악몽처럼 살아있던 고통이 서버리고 안주하고 싶었다. 이런 시기가 어쩌면 10주년 나이인 것같다. 10년 역사 안에 좋은 학교 양업이 되어 있음을 보고 지나 온 고통이 일궈낸 부활을 본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학생도 커갔고, 교사도 커갔고, 학부모도 커갔다. 그리고 교장도 커갔다. 참으로 은혜롭고 행복했기에 감사하다. 잘 갖춰진 아름다운 학교, 교육철학이 세워진 학교,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협력하는 학교,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잘 잡혀진 학교는, 이제 어디에 내어 놓아도 떳떳하고 당당하다. 졸업생들이 찾아와 희로애락을 이야기 하면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그렇게 절망적인 아이들 이었는데 그 아이들의 옛 모습 다 죽어버렸고 그들 안에 생생한 부활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기쁘다. 다시 10주년 지내며 삶을 흔들어 깨워야겠다. 가난한 시절의 부족했기에 찾아 얻으려는 열정,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수많은 은인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 그래서 소명을 끊임없이 가꾸어 가야 한다는 열정, 그 마음을 다시 꺼내 불을 지펴 가난한자의 초심으로 돌아가 서 있어야겠다. 교육의 대안을 만들고 끊임없이 교육철학을 세워가며 명문 대안학교로의 자리를 더욱 세상에 확대토록 노력할 것이다.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께 축복을 청한다.
“우리들이 버린 학생들, 그런 학생들을 위한 학교, 안 됩니다!” 교육계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절망적인 말을 들으며, 2년 동안 학교 태어남의 산고를 겪은 후 땅을 판 후 기초를 놓고 한 층, 한 층 건물을 이루어 가길 몇 해, 철들지 않은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건물을 이루던 몇 해, 참 힘들고 어려웠는데 벌써 개교 10주년이 되었다.
밥 먹을 숟가락 하나, 퍼 담을 그릇하나 변변한 것 없이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지금은 추억으로 아름답지만 그 때는 왜 그리 서럽고 어설프고 배가 고팠던지 무척 가난했다. 거지, 깡통 들고 서 있으면 담뿍 채워주던 정감 나던 나의 어린시절처럼 우리도 본당을 서성이면서 밥그릇 풍성히 채워 얻던 시절이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왜 그리 즐겁고 기뻤던지. 사실 지난 시간들은 암이 걸릴 것만 같았다. 숱한 사건 사고들,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다. 학교가 개교를 하고 6개월 되던 때의 일이다. 만수위가 되어 힘차게 내려가던 앞 냇물을 헤엄쳐 건너간다며 폼 잡던 아이들, 급물살에 파묻혀 이미 죽었을 아이들인데 냇가 한 가운데 섬처럼 드러난 모래톱 위로 기어올라 살아났던 기적, 지금도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들이지만 죽지는 않고 살아있다.
이러한 악재의 소식은 “그래 네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하는 나를 향한 빈정거림과 함께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만일 그놈들이 헤엄치다 익사해 실종 되어 버렸다면, 학교는 지금 더 이상의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너희가 우릴 사랑한다고?’라며 코웃음을 치던 아이들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나 보자!’며 선생님들을 매일 시험이라도 하듯 골탕 먹이던 사건들 후에, 그들은 우리를 인정하고 우리를 존중해갔다. 나는 담배도 맘껏 태우도록 허용했으며 술도 때론 함께 먹었다. 그들에게 즐거움이라고는 책이 아닌 담배, 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들로부터 얻어터지고 상납하고, 절절맸던 후배들···. 선배들이 졸업하고 조금 나아지고, 또 선배들이 졸업하고 조금 나아지고, 그러길 몇 해가 지날 무렵, 그들 스스로가 암병동 같은 ‘흡연터’를 없애버렸다. 교사들이 인내하기 어렵다고 성가셔서 흡연터를 강제로 없애버렸다면, 교사와 학생들이 팽팽히 평행선을 그었을 것이다. 그들이 경험한 고통들로 철이 들어 건강한 학교가 필요하다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을 때 그 암실을 없애버린 것이었다. 이제 누가 보아도 ‘폭력이 없는 학교’, ‘무단결석이 없는 학교’, ‘낙오자가 없는 학교’인 ‘좋은 학교 양업’이 되었다.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는 교훈이 그 실효를 거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자기를 존중했으며 남을 배려하는 학생”이 되어갔다. “좋은 선택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면 그 응분의 책임을 지는 학생”이 되어갔다. “인성교육의 토양은 그들에게 학업성취도를 높이며 살아가는 당당하고 훌륭한 학생”들로 자리를 잡았다. 매년 입학 경쟁율이 5대 1을 넘고 있음이 그를 말해준다.
우리는 오래도록 인내하며 학생들을 기다려 주었다. 그 덕분에 그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우리가 공교육 교사들처럼 욕심도 생겨나고 조급해져가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됨을 알지만 학부모가 더 욕심을 부린다. 솔직히 옛날처럼 재미가 없다. 사실 내 자신이 악몽처럼 살아있던 고통이 서버리고 안주하고 싶었다. 이런 시기가 어쩌면 10주년 나이인 것같다. 10년 역사 안에 좋은 학교 양업이 되어 있음을 보고 지나 온 고통이 일궈낸 부활을 본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학생도 커갔고, 교사도 커갔고, 학부모도 커갔다. 그리고 교장도 커갔다. 참으로 은혜롭고 행복했기에 감사하다. 잘 갖춰진 아름다운 학교, 교육철학이 세워진 학교,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협력하는 학교,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잘 잡혀진 학교는, 이제 어디에 내어 놓아도 떳떳하고 당당하다. 졸업생들이 찾아와 희로애락을 이야기 하면 나도 덩달아 행복하다. 그렇게 절망적인 아이들 이었는데 그 아이들의 옛 모습 다 죽어버렸고 그들 안에 생생한 부활을 보고 있으니 참으로 기쁘다. 다시 10주년 지내며 삶을 흔들어 깨워야겠다. 가난한 시절의 부족했기에 찾아 얻으려는 열정,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수많은 은인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 그래서 소명을 끊임없이 가꾸어 가야 한다는 열정, 그 마음을 다시 꺼내 불을 지펴 가난한자의 초심으로 돌아가 서 있어야겠다. 교육의 대안을 만들고 끊임없이 교육철학을 세워가며 명문 대안학교로의 자리를 더욱 세상에 확대토록 노력할 것이다.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께 축복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