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밭에 순겨진 보물과 같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61 | 작성일 : 2008년 8월 25일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25년 전, 첫 본당 시절에 만났던 한 신자분이 찾아 왔다. 그 때 그분은 지병으로 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칠순인 그분은 뜻밖에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를 본 나는 “어떻게 그리 젊어지셨습니까?”하자, 그분은 “언제인지 지병에서 해방되었고 이렇게 건강해졌다.”고 말해주었다. 이 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느냐며 내가 기뻐하자 옆에 함께 있던 부인과 딸이 덩달아 기분 좋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분은 “신부님!  사제수품 은경을 축하합니다. 그 날 제가 영광스런 자리에 참석을 해야 했는데 그 날 마침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라며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양주 한 병 사들고 왔다면서 축하선물로 내어 놓는 것이었다. 서로가 헤어진 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기억 속에 꺼낼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첫 본당 시절, 풋풋해서 미숙한 사제로 본당을 꾸려가고 있을 때, 그분도 막 영세를 했고 풋풋해서 미숙한 신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분은 시골성당 인재난으로 영세 후 바로 출세를 해서 사목위원이 되었으니 만나면 사목문제를 세속적으로 풀어가려 했었다. 나도 그도 미숙한 신앙의 얕은 지식만 지니고 있을 뿐, 기도 보다는 일을 우선으로 여겼다. 매사에 어설펐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진다. 자녀들을 멋있게 길러낸 노부부는 행복해 보였고 그의 신앙생활에서도 성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13.44)는 예수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인가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제자 됨을 청하면서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그리고 “나를 따라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때 부자 청년은 울상이 되어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그 꼴이었습니다. 저에게 돈이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 돈은 곧 행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인가 저에게 이 말씀이 생생하게 피어나는 것이었어요. 돈이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성령께서 저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제가 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제 생명을 가꾸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유럽 전역으로, 예루살렘 성지로, 호주, 뉴질랜드로, 중국으로, 미국으로, 남미로 말입니다. 저는 여행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유럽문화, 아시아 문화, 법을 잘 지키는 성숙한 나라, 부패를 일삼는 무질서의 나라, 장애인을 우선하는 복지의 나라, 백성을 볼보지 않는 부패한 나라들도 보았습니다. 미래를 향해 살며 자유를 만끽하는 기쁨의 국민들도 보았고, 작은 부를 탕진하며 자유를 방종하며 여겨 즐기는 국민들도 보았습니다. 후진국, 선진국의 차이를 읽고 배웠습니다. 실용주의 나라 미국도 보았고, 궁극적 목적을 지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유럽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나는 여행을 하며 내 자신도 점검하며 늦게 철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들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여행 중에 가장 은총의 시간은 제 신앙을 점검하며 더욱 성숙시켜 갔고 풍요로운 생명을 간직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삶의 비전도 없이 실용적 수단에 목을 매고 급급해 살아가던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줄 곧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진 보물과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이 모아집니다.  제가 찾은 가장 값진 보물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야 저 저신이 신앙고백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풋내기 시절의 신자와 사제가 다시 만난 오늘, 삶 속에 발견한 값진 보물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신부님 오늘 중복인데 식사나 하러 가시지요.” 아쉽게도 그날은 어머님의 생신날이었다. 식사를 나누며 못다 한 보물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를 마련하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영적으로 풋내기 첫 본당시절에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워진다. 하느님의 교회는 그분을 성숙시켜주었고 나를 사제로 성숙시켜주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