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0주년을 지내면서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09 | 작성일 : 2008년 4월 25일
신록의 계절, 성모님의 달, 오월을 또 다시 맞이합니다. 우리가 지냈던 4월은, 하느님께서 침울했던 겨울 산을 푸름의 봄빛으로 채색시켜 주셨고, 또 다시 새롭게 맞이하는 오월은, 인생의 한 여름을 살듯 젊게 시작합니다. 세상을 온통 파란 풀밭으로 꾸며주시고 이 몸 편히 쉬도록 뉘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안학교 양업의 개교 10주년이 막 지났습니다. 엊그제 같이 느껴지는 시작이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전혀 실감나질 않습니다. 모두가 어설프고 가난했지만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10년을 한결같이 주님께서 저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셔서 양업은 결코 외롭지 않고 늘 행복했습니다. 10년 전, 이 학교에 몸담고 응석부리던 철부지 학생들도 이젠 철든 어른이 되어 실한 나무들처럼 사회 속에 뿌리를 내려갑니다. 10주년을 경축한다고 지난날 나를 괴롭혔던 졸업생들은 학부모들 손잡고 양업 동산에 모여왔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들 하나, 하나 다시 포옹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파란풀밭에서 생명을 가꾸던 그들이 마음 모아 감사미사를 드렸습니다. 존경하올 장 가브리엘 주교님과 사제단, 그리고 여러 내빈을 모시고 드리는 감사의 미사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10년 전 처음으로 만났던 학생들이 10주년을 경축하는 양업 모교에 찾아와서 저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들려준 선물은, 새롭게 볼 수 있는 환한 얼굴과 감사가 담긴 다음의 대화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적응 학생들이 다니던 수용의 대안학교였는데 이제는 교육철학이 분명한 대안교육의 장입니다. 학생들을 섬기며 희생으로 보듬던 선생님들이 고맙습니다. 하위의 가치와 목표로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는데, 상위의 가치와 목적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왜 우리한테 자유롭게 해 주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자유 안에서 책임을 배웠고 제 자신을 통제하는 자발성을 얻어갔습니다. 선생님들은 저희들에게 지시, 명령, 강제, 비난, 설교 등으로 간섭하지 않았고 자발성을 통해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해 나아가도록 저희를 성장시켜주었습니다. 저희가 지겨운 곳으로 여기던 교실에서 세상 밖으로 인도하며 교육적 경험을 쌓아주는 삶의 교육을 실현해 주었습니다. 기숙사에서 3년간의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고 수직적인 선후배간의 인간관계 또한 힘들었지만, 그 생활 덕분에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성도 기르고 공동체 정신을 익혀갔습니다. 양업은 학부모와 교사가 저희들을 사랑으로 드높였던 사랑의 학교입니다.
교실이란 제한된 공간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끌어 낸 10년의 인간교육은, 즐거움의 대상인 담배와 술을 없어지게 했고, 그들의 옆구리에 교과서와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여 아름답습니다. 새벽 동트는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공부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더욱 행복해 보입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환한 얼굴을 나는 다시 한번 더 바라봅니다. 그 때는 힘들었었는데 지금 이 자리가 못내 헤어지기가 섭섭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착해빠진 마마보이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맹목적이지 않았습니다. 끼가 많고 뱃장도 두둑한 똑똑한 아이들이었고 당당히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해 가는 제법 철학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을 ‘문제아’라고 치부했던 어른들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대안교육의 중심으로 우뚝 선 양업입니다. 개교 10주년을 맞이해 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더욱 잘들 살아라. 안녕
2008년 5월에 윤병훈 신부 드림
대안학교 양업의 개교 10주년이 막 지났습니다. 엊그제 같이 느껴지는 시작이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니 전혀 실감나질 않습니다. 모두가 어설프고 가난했지만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10년을 한결같이 주님께서 저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셔서 양업은 결코 외롭지 않고 늘 행복했습니다. 10년 전, 이 학교에 몸담고 응석부리던 철부지 학생들도 이젠 철든 어른이 되어 실한 나무들처럼 사회 속에 뿌리를 내려갑니다. 10주년을 경축한다고 지난날 나를 괴롭혔던 졸업생들은 학부모들 손잡고 양업 동산에 모여왔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들 하나, 하나 다시 포옹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파란풀밭에서 생명을 가꾸던 그들이 마음 모아 감사미사를 드렸습니다. 존경하올 장 가브리엘 주교님과 사제단, 그리고 여러 내빈을 모시고 드리는 감사의 미사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10년 전 처음으로 만났던 학생들이 10주년을 경축하는 양업 모교에 찾아와서 저에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들려준 선물은, 새롭게 볼 수 있는 환한 얼굴과 감사가 담긴 다음의 대화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적응 학생들이 다니던 수용의 대안학교였는데 이제는 교육철학이 분명한 대안교육의 장입니다. 학생들을 섬기며 희생으로 보듬던 선생님들이 고맙습니다. 하위의 가치와 목표로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는데, 상위의 가치와 목적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왜 우리한테 자유롭게 해 주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자유 안에서 책임을 배웠고 제 자신을 통제하는 자발성을 얻어갔습니다. 선생님들은 저희들에게 지시, 명령, 강제, 비난, 설교 등으로 간섭하지 않았고 자발성을 통해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해 나아가도록 저희를 성장시켜주었습니다. 저희가 지겨운 곳으로 여기던 교실에서 세상 밖으로 인도하며 교육적 경험을 쌓아주는 삶의 교육을 실현해 주었습니다. 기숙사에서 3년간의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고 수직적인 선후배간의 인간관계 또한 힘들었지만, 그 생활 덕분에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성도 기르고 공동체 정신을 익혀갔습니다. 양업은 학부모와 교사가 저희들을 사랑으로 드높였던 사랑의 학교입니다.
교실이란 제한된 공간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끌어 낸 10년의 인간교육은, 즐거움의 대상인 담배와 술을 없어지게 했고, 그들의 옆구리에 교과서와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여 아름답습니다. 새벽 동트는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공부하는 후배들의 모습이 더욱 행복해 보입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환한 얼굴을 나는 다시 한번 더 바라봅니다. 그 때는 힘들었었는데 지금 이 자리가 못내 헤어지기가 섭섭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착해빠진 마마보이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맹목적이지 않았습니다. 끼가 많고 뱃장도 두둑한 똑똑한 아이들이었고 당당히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해 가는 제법 철학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을 ‘문제아’라고 치부했던 어른들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대안교육의 중심으로 우뚝 선 양업입니다. 개교 10주년을 맞이해 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더욱 잘들 살아라. 안녕
2008년 5월에 윤병훈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