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만 이야기한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10 | 작성일 : 2008년 5월 27일
두고두고 고통만 이야기 한다
사람은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질이 상승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고 시작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만일 중도에 포기한다면 그의 마음엔 원망스런 고통만 남게 되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기쁨을 이야기 할 수가 없게 된다.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비천한 신세를 높여 주시겠다는 부르심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에 신이 났다. 언젠가 때가오면 출세도 할 것이고, 무지개 빛 희망에 가슴 벅찼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괜히 어깨가 으쓱 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영안이 부족해서 세속에 헤매며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을 뿐이다.
아뿔싸,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한껏 기대를 걸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셨고, 세상은 그분이 죽어 묻혔다는 소식뿐이었다. 가끔 그분과 지내면서 그분에게 들려준 그럴듯한 신앙고백은 있었지만 그분에 대한 실망스런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들은 꿈을 접고 낙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자신들을 부를 때 이런 꼴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마 따라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투덜대면서 그분께 대한 실망과 처절한 고통만을 남겨놓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그들을 죽음에서 기쁨으로 살아나게 하셨다.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베드로에게, 요한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열한 제자에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생함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바오로에게, 그리고 바닥을 기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 얼마나 생생한 기적인가. 절망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평생을 암울하게 지낼 것 같은 제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기쁨을 주셨다. 이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기쁨을 향하여 참고 살아볼 일이다’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인 셈이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주님은 고통 속에 부활을 보게 하고, 불안 속에 평화를 마련해 주시며, 풍요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학교생활이 힘들어 중도에 떠난 교사들과 학생들이 생각난다. 이들의 삶의 자리에 고통만 남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다. 끝까지 살아남은 우리는 이렇게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견딜만한 고통을 주시고, 그 고통 속에 기쁨의 결실을 꼭 담아주신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을 선물해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생명의 풍요함이 내 것이 되어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기에는 우리가 참고 인내하며 살 일들이 산적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고통 때문에 희망을 접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질이 상승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고 시작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만일 중도에 포기한다면 그의 마음엔 원망스런 고통만 남게 되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기쁨을 이야기 할 수가 없게 된다.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비천한 신세를 높여 주시겠다는 부르심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에 신이 났다. 언젠가 때가오면 출세도 할 것이고, 무지개 빛 희망에 가슴 벅찼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괜히 어깨가 으쓱 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 영안이 부족해서 세속에 헤매며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을 뿐이다.
아뿔싸,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한껏 기대를 걸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셨고, 세상은 그분이 죽어 묻혔다는 소식뿐이었다. 가끔 그분과 지내면서 그분에게 들려준 그럴듯한 신앙고백은 있었지만 그분에 대한 실망스런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들은 꿈을 접고 낙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자신들을 부를 때 이런 꼴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마 따라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투덜대면서 그분께 대한 실망과 처절한 고통만을 남겨놓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그들을 죽음에서 기쁨으로 살아나게 하셨다.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베드로에게, 요한에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열한 제자에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생함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바오로에게, 그리고 바닥을 기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 얼마나 생생한 기적인가. 절망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평생을 암울하게 지낼 것 같은 제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기쁨을 주셨다. 이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기쁨을 향하여 참고 살아볼 일이다’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인 셈이다.
오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다. 주님은 고통 속에 부활을 보게 하고, 불안 속에 평화를 마련해 주시며, 풍요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학교생활이 힘들어 중도에 떠난 교사들과 학생들이 생각난다. 이들의 삶의 자리에 고통만 남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깝다. 끝까지 살아남은 우리는 이렇게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견딜만한 고통을 주시고, 그 고통 속에 기쁨의 결실을 꼭 담아주신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을 선물해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생명의 풍요함이 내 것이 되어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기에는 우리가 참고 인내하며 살 일들이 산적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고통 때문에 희망을 접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