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 것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179 | 작성일 : 2008년 5월 27일

                      함께 한다는 것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밤낮없이 그들과 함께 하셨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떠날 시간을 아주 미미하게 알아들을 만큼 알려주셨는데, 이는 제자들이 수용의 자세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라고 명령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나선다. 그 순간부터 예수님은 그들과 줄곧 함께하신다.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수난예고”를 들려주시자, 제자들은 “수난예고”로 불안해했다. 예수님의 ‘수난하심과 죽으심’의 일이 있은 후 사흘이 지났을 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라며 그들에게 인사하셨다. 제자들의 불안이 말끔히  가시고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내가 떠나야….” 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에게는 또 다른 불안이 찾아들어 평화를 잃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협조자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성령을 보내주시며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말씀을 들려주신다.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시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영원히 함께하심‘을 알게 해주심으로 제자들은 독자 행보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함께하시며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이루어 가시고자 하시는데, 이는 끝까지 함께 하시며 공들인 결실이었다. 
  10년 동안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밤낮없이 함께 지냈다. 힘이 쇠진할 때라도 우리는 학생들 옆에 있었다. 개교 후 3년은 퇴근도 없이 그들과 함께했다. 좋은 학교가 되어 지금은  격일로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학생들은 동료에게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왕따를 시키면서 괴롭히기도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늘 선생님들이 옆에 계시다는 든든한 믿음이 힘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들을 지지해주던 선생님들과 언젠가는 작별의 시간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다는 것에 또 불안해 할 것이다. 어디 가서 이런 행복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맛볼 수 있을까. 그런데 그즈음의 학생들은 자기들을 어디를 갖다 놓아도 당당히 서 있을 만큼 훌쩍 자라있을 것이고, 선생님들의 사랑이 삶의 동력으로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네들 집에는 부모님이 부재 상태이다. 돈벌이를 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부부 사이도 서로 위로와 힘으로 함께하지 못한다. 함께한다는 건 외형적일 뿐이다. 부모와 자녀관계 안에서 책임과 친밀함도 없이 참으로 딱한 상황이 이어진다. 학교에서 텅 빈 아파트로 돌아 온 아이는 외롭게 버려진 신세처럼 컴퓨터가 친구가 된다. 주변 상황이 얼마나 불안하고 실망스러울까.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처럼 우리 가정엔 자녀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부모님이 항상 있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 학교엔 학생들에게 위로와 희망, 사랑을 가져다주는 선생님들이 계시다. 학생들이 선생님과 작별을 고할 때, 그들 안에 사랑이 남아 영원히 함께할 대상으로 남게 한다. 그들이 졸업하고 떠나는 날, 사랑에 대한 뜨거운 감동, 존경과 사랑, 풍요로운 생명의 기운이 움터나는데, 이는 우리 안에 작용하시는 성령님의 선물이라 여겨진다. 성령님이 오시면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시고, 우리는 또 다른 성숙한 어른이 되어 바통을 터치를 하고 훌륭히 살아가게 된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주신다는 것, 이 얼마나 든든한 활력인가. 성령님이 오시면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더욱 우리 안에 더욱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