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이 공존하는 교육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21 | 작성일 : 2007년 10월 20일

연중 제27주일(07.10.07)                 제482호
            종교와 과학이 공존하는 교육.
 
 중국 심양을 학생들과 찾은 지도 벌써 6년째이다.9월의 끝날 인데도 날씨도 마음도 겨울처럼 차갑다. 언젠가 하얼빈에 위치한 마루타 부대인 731부대를 보며 일본군의 죄악성에 전신이 전율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한국의 일제치하 36년 간을 생각하며 “심양 9.18 박물관”에서의 “勿忘 9.18”이란 글귀의 의미가 마음을 파고들었다.
 일본이 서양 학문을 받아들인 때는 1500년대의 일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2백년이나 먼저 서양과학을 받아들였다. 일본인들은 서양인들이 총의 방아쇠를 당겨 한 순간에 돌무더기를 사라지게 하는 화력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엄청난 고액을 지불하여 총 한정을 사들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들인 총과 똑같은 총을 만들고는 총알을 넣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화력은 엄청난 반면 총알이 코 앞에 떨어졌다. 그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서양인에게 다시 물었다. “왜 총알이 목표물에 미치지 못하고 코 앞에 힘없이 떨어지는 겁니까?” 서양인들이 쉽게 기술을 가르쳐 줄 리가 없다. 일본인은 또다시 서양인에게 엄청난 고액을 지불하여, ‘화력의 위력이 총열 내 우회선의 작용에 의해 나온다.’ 는 기술을 사들였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이백년 먼저 서양종교를 받아들였으나,서양과학기술로 침략야욕을 키워갔다. 그들은 모든 욕심의 답을 ‘종교’에 근거하지 않고 오르지 ‘과학기술로만 해결하려 했다. 그들은 종교가 갖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르지 세력 확장으로 극악해질 즈음, 잠자는 하와이를 침공하고는 전쟁의 막을 내렸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일본의 히로시마에 터트린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 투하의 선택은 과학 신봉자들의 결정이었고, 이는 또 다른 큰 상처를 남겼다. 과학자들은 원폭의 위력이 엄청남을 감지했을 것이다. 원폭의 사용결정은 과학자들만이 결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는 종교인에게 있다는 것을 외면했다. 과학 신봉자들이 종교를 잃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종교 없는 과학기술은 참으로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다. 종교가 부재한 독선적 과학이 인류를 얼마큼 큰 파멸로 몰고 간다는 것을 역사는 생생히 보여주었다.      
 학교공부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형이상학의 위치는 과학 신봉자에 의해 소멸되고 있다. 볼 수 있는 자연과학의 영역을 뛰어 넘어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과학과 종교는 결코 대립의 관계가 아니며 상생의 관계로 종교의 기초 위에 건강한 과학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교육은 하느님 자녀답게 살아가는 상생의 기초를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내가 강하지 않으면 남에게 먹힌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내가 강자가 되었을 때 남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인간을 육성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는 교육의 결과는 어제의 일본만큼이나 그런 큰 재앙을 세상에 안겨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