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구유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656 | 작성일 : 2007년 12월 18일

                                성탄구유

  캄캄한 별밤은 아름답다. 하늘에 수놓은 별밤은 인공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은 별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둔 하늘에 차려놓은 수많은 별들이 어디 서울의 화려한 별밤과 같겠는가. 마음씨 착한 수녀님이 자연의 소재를 빌어 캄캄한 별밤 같이 느껴지는 성탄구유를 꾸며 놓았다. 학생들이 방학이 되어 집으로 떠나기 전에 아기 예수님을 일찌감치 구유에 모셔 두었다. 금년에는 소박한 구유 덕분에 저절로 기도가 될 것 같다.
  요즘 아파트는 방문하기도 매우 어렵다. 센서가 사람을 일일이 감시하고 키 장치도 복잡해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 없다. 불신의 시대에 철통같은 시건장치는 사람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하고 또한 단절시켰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마다 서로를 감시하며 마음을 닫아걸고 살아가는 요즘, 우리들에게 성탄구유는 어떤 교훈을 줄까?

  성탄구유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비롯되었다. 천성이 자유로웠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린시절을 부유한 아버지의 강성에 억압 받으며 틀 속에 갇혀 명예, 부, 건강, 자신감을 만끽하며 모든 기대를 이룰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하고 병원신세가 된 초라한 프란치스코는, 훨훨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들 만큼도 자유롭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된다. 한 순간에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고 건강한 자기 본래 모습을 찾고자 노력하였고, 그러한 가운데에 예수님이 그의 마음 안에 강생을 시도하여 강제로 생성되어진 프란치스코를 후련하게 털고 일어나게 도와주신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버려진 성전을 재건하라.”는 말씀은 그를 새로운 삶으로 부르셨다.
  성탄구유는 평화롭다. 비록 초라한 말구유이지만 평안이 잠든 아기 예수님,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 마리아와 양부 요셉, 그리고 착한 목동, 삼왕의 방문, 몇 마리의 가축들이 예수님의 성탄을 경축하고 있다. 성탄구유는 비록 가난하지만 훈훈하고 따듯하다. 성탄 구유가 지닌 교훈은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오심으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사도 바오로의 진리를 만나게 한다.
  캄캄한 별밤을 버리고 화려한 별밤만을 마련하고 사는 내 자신이 왠지 씁쓸하고 허전하다. 캄캄한 별밤이 되고 싶다. 가난하지만 훈훈한 느낌을 주는 별밤 말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유로이 성탄을 경축하고 싶다. 소박한 성탄구유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