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성탄절에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334 | 작성일 : 2007년 12월 18일

                            강생(降生)의 신비

  학생들이 종종 산골에 버려진 애완견이 불쌍하다며 학교로 데리고 온다. 애완견이 학생들에게는 좋지만 공동체 생활에 성가실 때가 많다. 살아있는 동물이라서 내다 버리라고 할 수도 없고, 학생들과 실랑이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일 날 오후, 텅 빈 운동장에 오르면서 나는 애완견 한 마리를 발견했으나, 반갑지도 않고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강아지는 풀이 죽은 듯 어디론가 가버렸고 그 후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강아지가 학교 복도에 들어와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학생들에게 나는 “정들기 전에 돌려보내라.” 라고 한마디하고는, 교장실로 들어와 일을 보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교장실에 노크를 하며 들어오는데, 심기가 부어 오른 얼굴이었다. “어쩐 일이지?” “신부님, 강아지 갖다 버리라고 하셨어요?” 그렇다고 말하면 금방 눈물이 곧 터질 것 같아,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여학생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신부님, 제가 운동장에 올라갔을 때 그 강아지가 복도까지 저를 따라 들어왔어요. 허기져서 비틀거리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여, 밥과 물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꼬리를 흔들며 저만 따라 다니는데, 그런 강아지를 어떻게 하나요.” 인정 많고 사랑스런 그 여학생에게, “밖에다가 개집을 준비해주고 따뜻하게 해주어라” 라고 말하자, 그 학생은 편안한 마음이 되어 돌아갔다. 그리고 기력을 회복한 애완견은 가족처럼 너른 잔디밭을 자기 놀이터인양 즐거워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일을 만나며 갑자기 착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루카10.29-37)가 생각났다. 강도를 만나 처절하게 언덕 밑으로 처박혀 초주검이 된 사람을 사제도 레위인도 모른 척 지나쳐 길 반대쪽으로 가버렸지만, 사마리아 인은 달랐다. 그는 초주검이 된 사람에게 상처를 싸매주고 여관에 데려가 연관집 주인에게 극진히 치료해 줄 것을 부탁을 하고는 길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겠다고 일러주기까지 했다. 강도 만난 사람과 버려진 애완견에게 사마리아 인과 여학생은 큰 사랑이요, 생명의 은인일 것이다. 이에 두 이야기가 보여준 사랑의 모습은 나를 감동케 한다.
  성탄을 앞두고 강생(降生)의 신비를 헤아려 본다. 가엾은 마음이 되어 그 대상에게 몸소 내려가고 그 사랑은 다시 생명으로 돌려받는다. 위에 두 이야기는 강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참으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성탄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얼까?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시고, 인간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생생한 생명으로 살아난다. 이 강생의 신비를 보는 순간 바로 성탄의 의미임을 알게 된다. 강생의 신비를 담고 있는 성탄구유 앞에 무릎 꿇고 묵상하면,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드러나고 신앙인인 나는 예수님의 성탄을 온 마음으로 경축한다.
  강생(降生)은 누군가 나에게 내려옴으로 내가 생명이 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내려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느님은 그 약속대로 우리 인간에게 내려오신다.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구체적인 사랑으로 내려오신다. 나를 가엾게 여기시고 새롭게 살리기 위해 내려오신다. 그 내려오심의 큰 사랑이 내 마음 안에 피어날 때면 나는 회개하게 되고 그 분께로 향한 감사의 미사를 드린다. 바로 이 미사가 그리스도의 미사(크리스마스)인 것이다. 금년에도 성탄의 의미가 살아나 자선냄비에 사랑이 가득 찼으면 한다. 훈훈한 사랑으로 내가 기쁜 성탄이 되어진다면 이웃의 가난한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복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