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45 | 작성일 : 2008년 8월 25일

                          자연의 섭리

  매년 봄이 오면 우리 학생들은 인성교과의 하나로 농촌 마을로 봉사활동을 떠나는데, 해가 갈수록 봉사의 질이 높아져서 농촌에서 대인기이다. 성실한 선배들의 손놀림을 보고 있던 후배들도 눈썰미 있게 배우고는 어설프지만 잘 따라 한다. 그래서 봉사활동은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학생들은 이틀 동안 모판에 볍씨를 드리운 작업을 마치고는 서너 개의 모판을 학교로 가져왔었다. 노작 시간에 벼를 가꿔볼 셈이었다. 해가 잘 깃드는 빈 공간의 콘크리트 평면위에 높게 박스를 만들고는 바닥에 비닐을 깔고 흙에 퇴비를 잘 혼합하여 넣고는 논을 만들었다.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가져온 모판을 그 위에 올려놓고 물을 넣어주었다. 4월, 그리고 5월 한 달을 지나면서 모는 제법 튼튼하게 자라났다. 농촌이 한창 모내기를 할 무렵 우리도 정성껏 모내기를 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논의 물은 유입되고 배출하는 곳이 전혀 없어 쉽게 부패하고 모기의 서식처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는 완전히 기우였다. 물은 유동이 없었지만 여전히 썩지 않았고, 벼는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잘 견뎌내며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 동안 벼는 제법 자라 장엽이 나오고 벼줄기에는 통통하게 벼이삭이 배기 시작했다. 나는 간간이 병충해로 줄기가 말라 죽은 벼를 뽑아주었고, 나방의 알이 부화하여 애벌레들이 줄기를 갉아 죽게 되면 제거해 주었다. 그런데 사마귀란 천적이 나타나 해충인 애벌래를 잡아먹고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물위에 떠있는 개구리밥, 생이가래들이 생겨나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물의 부패를 방지하고 벼의 건강한 생육을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이었다. 개구리밥, 생이가래 등은 낮에 산소를 벼에 공급하고 일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광합성 작용으로 물은 정화되었으며, 이런 자연의 섭리에 벼는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벼는 8월 중순을 지나면서 예쁜 벼꽃을 드러내고 있다. 생육의 환경이 나쁜데도 자연은 좋은 조건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하다.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강제하며 재배했던 벼보다 훨씬 우리 벼가 더 튼튼하게 자라났다. 먹이사슬이 끊기고, 천적이 죽어가고, 그들 스스로가 살아갈 자생력을 점점 더 잃어갈 때, 우리의 벼들이 자라나는 현장에는 먹이사슬이 살아나고, 천적이 생겨나 건강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영되는 “벌들이 죽어가고 있다.” 는 다큐를 보았다. 벌이 멸종위기를 맞으면 작물은 수정이 안 되고 식량생산이 줄어들고 인간은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제 과학도 더욱 진지해질 때다. 과학의 발달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모든 생명을 강제로 끌고 다닌다. 모든 생명이 많은 부분 자연의 섭리에 맡겨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을 보면서도 어른들은 너무 빨리 강제함으로써 결과를 보고 싶어 안달이다. “아동들을 자연 앞에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놀이와 활동을 즐기며 행복하게 자라갈 것이다.” 라는 루소의 주장이 생각난다. 나는 일본 홋카이도의 아사이가와에서 가까운 나요로라는 도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가정학교’를 견학한 적이 있다. 12만평 너른 대지 위에 100년 수령의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학교림 속에 54명의 학생들이 선생님과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지내며 생명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을 보았다. 도시 속에 강제로 간섭받고 상처를 받은 청소년들은 6개월이 지나면 모두가 치유가 되어 건강한 생명이 된다고 들었다. 자연은 건강한 벼를 키워내듯 청소년들도 건강하게 키워낸다. 일정량 자연스러움 안에서 건강함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