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한 학생이 남 탓하면 안 된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194 | 작성일 : 2006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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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전체 속에 자신이 당당히 서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혼자 외롭게 숨어 사는 학생들이 있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이들을 '부적응아‘라고 말한다. 부적응아인 학생이 자신의 부적응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는, 학교에 적응하려는 생각보다는 적응하며 잘 사는 학생들을 원망하는 모습을 본다. 지금 3학년들 중에 졸업하지 못하고 떠난 학생들이 그랬었다. 부모들도 힘든 자녀의 일을 보며 중심을 잃고 학교를 탓할 뿐, 부적응한 자녀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이 아이가 이런 아이니까 잘 적응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은 접어두고, 건강한 학교 또래들이 문제라고 고함을 치고는 학교를 떠났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지금껏 당당히 서 있는 3학년 졸업반을 보면 부적응에서 적응을 일구어 낸, ‘인간 승리자’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여기 중심엔 또 다른 훌륭한 부모가 있음을 보게 된다. 한 학생의 경우,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고 중학교 시절부터 한국에서 보내, 당연히 문화적 차이로 학교 생활이 부적응하였다. 말 표현이 정확치 않고, 또래 간 대화에도 이해의 폭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추행이요, 폭력으로 인정하는 외국의 문화와 툭툭치며 장난쳐도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 문화의 괴리가 불거진 부적응이 있었다. 옆에서 그런 학생을 보며 살펴줄 뿐 한 학기 내내 별다른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부모들도 힘들어하는 아들을 과잉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부모의 외국유학으로 아들이 어린 시절 외국에 있어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배우지 못한 것은 잘못으로 인정하면서, 한국에 돌아 와서는 부적응해서 발생하는 문제를 남의 또래 탓으로 돌린다면 결국 당당하게 설 수는 없을 것이고 검정고시를 보게 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이러한 부적응에 대한 해결방법은 부모님이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니다. 문화적 차이로 부적응한 당사자가 우리 문화에 들어왔다면 우리 문화를 익히며 또래들과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도록 자신이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학생은 스스로 처신하여 해결했다. 한국말도 어둔했던 학생이지만 일 년을 적극적으로 살았으니 이제 제법 한국말도 잘하게 되었고, 문화도 익혔으며 전체 속에 자신을 당당히 세워가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 학생이 대견스럽다. 부적응은 자신의 문제이고, 결코 남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체 속에 자신을 자리 잡게 할 때 적응으로의 승자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일 년을 어려움 속에 잘 살아 준 그 학생에게 격려의 박수를, 그리고 부모에게 축복을 전한다</FONT></SPAN> </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전체 속에 자신이 당당히 서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혼자 외롭게 숨어 사는 학생들이 있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는 이들을 '부적응아‘라고 말한다. 부적응아인 학생이 자신의 부적응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는, 학교에 적응하려는 생각보다는 적응하며 잘 사는 학생들을 원망하는 모습을 본다. 지금 3학년들 중에 졸업하지 못하고 떠난 학생들이 그랬었다. 부모들도 힘든 자녀의 일을 보며 중심을 잃고 학교를 탓할 뿐, 부적응한 자녀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이 아이가 이런 아이니까 잘 적응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은 접어두고, 건강한 학교 또래들이 문제라고 고함을 치고는 학교를 떠났다. </FON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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