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가 버려야 할 것이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171 | 작성일 : 2006년 5월 31일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지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신부님, 학생들 때문에 고생 많으시지요?” 그들은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을 일반학생들과 구별된 학생으로 여기고 걱정하는 표현들이다. 사람들이 어른들을 양질과 악질로 구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라나는 미성년자들을 미리부터 단죄하듯 긍정과 부정이라는 고정의 틀 속에 구분지어 놓는 것은 왠지 바람직하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면 착한 학생, 그렇지 않으면 나쁜 학생 정도로 매도한다. 어른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넉넉하게 바라보지 않고 고정의 틀로 청소년들을 구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청소년들의 옹호자가 되어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려는 마음이 발동한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언젠가 늦은 오후 시간에 한 학생과 산책을 떠났다. 학교생활에 대하여 묻기도 하고 졸업생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선배들에 관해서 묻기도 하며 동행하였다. “참 흥미로운 학교입니다. 여러 경험들을 하게 되고 자발성이 발동되면 훌륭하게 변하게 하는 학교입니다.” 라는 듣기 좋은 답도 들었다. “선배들의 성격은 아주 독특했습니다. 개성이 튀고 너무 강했지요. 어떤 선배는 우리에게 답답함으로 다가올 정도로 카리스마적 존재로 리더십도 뛰어났고요. 어떤 선배는 자발성을 갖고 대안학생답게 3년 동안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강인함과 추진력을 보여주었지요. 또 어떤 선배는 움직이지 않고 늘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후배들에게 잘 대해주며 썰렁 개그를 하며 친근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 멋진 선배들이었는데, 다음에 다시 만나면 모두 멋있게 변해 있을 겁니다.” 나는 몇몇 선배의 이름을 거론할 때면, 그 학생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그 학생은 “모두들 멋있는 선배들이었지요.” 라는 긍정적인 답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학생의 말을 줄곧 들으면서 내 자신이 내심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동안 일부 졸업생들을 내 기억에서 떠올리기조차 싫었기에 더 그랬다. 내 자신이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정형화된 모범의 잣대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들이대고는 그 틀 속에 학생들이 있지 않을 때면 미운 대상으로 여긴 탓이기 때문이다. 선배들과 부딪혔던 어려움이 지금도그 학생의 기억 속에서 무척 힘들었을 텐데도, 미운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넉넉하고 긍정적인 평을 들려주는 그 학생이 성숙해 보인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16.24)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조금도 차별화된 구분이 없이 대함으로써, 모든 이가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려는 뜻”이 있음을 발견한다. 사랑의 참의미를 보게 해주시는 성령님께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감사를 드린다.</FONT> </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지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신부님, 학생들 때문에 고생 많으시지요?” 그들은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을 일반학생들과 구별된 학생으로 여기고 걱정하는 표현들이다. 사람들이 어른들을 양질과 악질로 구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라나는 미성년자들을 미리부터 단죄하듯 긍정과 부정이라는 고정의 틀 속에 구분지어 놓는 것은 왠지 바람직하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면 착한 학생, 그렇지 않으면 나쁜 학생 정도로 매도한다. 어른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넉넉하게 바라보지 않고 고정의 틀로 청소년들을 구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청소년들의 옹호자가 되어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려는 마음이 발동한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언젠가 늦은 오후 시간에 한 학생과 산책을 떠났다. 학교생활에 대하여 묻기도 하고 졸업생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선배들에 관해서 묻기도 하며 동행하였다. “참 흥미로운 학교입니다. 여러 경험들을 하게 되고 자발성이 발동되면 훌륭하게 변하게 하는 학교입니다.” 라는 듣기 좋은 답도 들었다. “선배들의 성격은 아주 독특했습니다. 개성이 튀고 너무 강했지요. 어떤 선배는 우리에게 답답함으로 다가올 정도로 카리스마적 존재로 리더십도 뛰어났고요. 어떤 선배는 자발성을 갖고 대안학생답게 3년 동안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강인함과 추진력을 보여주었지요. 또 어떤 선배는 움직이지 않고 늘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후배들에게 잘 대해주며 썰렁 개그를 하며 친근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 멋진 선배들이었는데, 다음에 다시 만나면 모두 멋있게 변해 있을 겁니다.” 나는 몇몇 선배의 이름을 거론할 때면, 그 학생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그 학생은 “모두들 멋있는 선배들이었지요.” 라는 긍정적인 답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FON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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