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는 교육적 경험을 넘어서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76 | 작성일 : 2007년 10월 20일
연중 제26주일(07.09.30) 제481호
설익은 교육적 경험의 그 한계를 넘어
우리 일행은 중국의 동북삼성 중 하나인 요령성의 심양을 돌아본 후, 길림성의 연길까지 14시간 야간열차여행을 하였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삼합과 북한의 회령은 색깔 조차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는데, 두만강은 푸르건만 북녘의 산자락은 북한의 식량난을 보여주듯 가난을 걸친 스님의 깁고 기운 옷처럼 온통 짜깁기를 했다. 한반도 최북단인 북한의 남양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중국 도문에 멈춰서다가 다시 동남쪽으로 시간 반을 달려 중국 훈춘에 도착했다. 이곳은 벌써 겨울이다. 두툼한 잠바차림에 구부정한 몸동작으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까지 움츠려들게 했다.
남북 정상들이 평양에서 만나는 이틀 동안, 우리도 평화를 기원하며 20만평의 광활한 벌판에 학생들을 세웠다. 우리 선조들이 일군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중국 벌판 길림성에서 우리 학생들은 이틀 내내 감자를 부대에 담는 작업을 했다. 명색이 ‘북한 돕기’이지만 내 자신의 미래를 키워가는 인간 만들기가 더 큰 목적이다.
다음은 한 학생과의 대화 내용이다.
“애들아! 광활한 벌판에 선 느낌이 어떠니?”, “너무 넓어서 기가 질리고 막막해요. 널려진 감자를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 지 엄두도 못 내겠고, 마음에 큰 부담이 됩니다.”, “막막하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네, 마치 평소 공부에 소홀한 제가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고 교과서를 폈을 때와 같은, 그런 막막함이요.”
“작업 중 자네의 그 막막함이 네 마음에서 언제 사라졌지?”, “네, 그 광활한 밭에 우리 학생들만 듬성듬성 섰을 때는 숨이 막힐 지경으로 막막했는데, 다른 인부들이 많이 와서 우리의 일을 거들 때 그 막막함이 사라졌어요. 갑자기 내 책임량이 줄어들어든 것 같은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마 공부할 때 느끼는 막막함도 누군가가 나를 거들어주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혼자라는 막막함에서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때 실마리가 풀림을 배웠습니다.” 이는 그 학생이 터득한 교육적 경험이다.
나는 막막함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학생에게 『토지』의 저자 박경리 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경리 씨는 남도의 섬진강을 끼고도는 ‘악양’이란 벌판에서 25년 간을 지내며 장편소설 『토지』를 집필했단다. 이는 어릴 적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세계사나 우주과학에 관한 책 등을 독서로 할애했고, 수도승 이상의 절제와 가난한 삶을 익힌 끝에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구나. 그가 『토지』의 배경이 되는 중국 용정을 한 번도 접하지 않고도 그곳을 충분히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삶 속에서 얻어낸 숱한 교육적 경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란다.”
학생들의 교육적 경험이 아직은 설익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바탕이 되어 폭발적인 에너지를 창출하리라 믿는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삶 속에서 얻어낸 교육적 경험을 통해 사고의 한계를 딛고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고,이것이 바로 인간 만들기 교육인 것이다.
설익은 교육적 경험의 그 한계를 넘어
우리 일행은 중국의 동북삼성 중 하나인 요령성의 심양을 돌아본 후, 길림성의 연길까지 14시간 야간열차여행을 하였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삼합과 북한의 회령은 색깔 조차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는데, 두만강은 푸르건만 북녘의 산자락은 북한의 식량난을 보여주듯 가난을 걸친 스님의 깁고 기운 옷처럼 온통 짜깁기를 했다. 한반도 최북단인 북한의 남양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중국 도문에 멈춰서다가 다시 동남쪽으로 시간 반을 달려 중국 훈춘에 도착했다. 이곳은 벌써 겨울이다. 두툼한 잠바차림에 구부정한 몸동작으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까지 움츠려들게 했다.
남북 정상들이 평양에서 만나는 이틀 동안, 우리도 평화를 기원하며 20만평의 광활한 벌판에 학생들을 세웠다. 우리 선조들이 일군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중국 벌판 길림성에서 우리 학생들은 이틀 내내 감자를 부대에 담는 작업을 했다. 명색이 ‘북한 돕기’이지만 내 자신의 미래를 키워가는 인간 만들기가 더 큰 목적이다.
다음은 한 학생과의 대화 내용이다.
“애들아! 광활한 벌판에 선 느낌이 어떠니?”, “너무 넓어서 기가 질리고 막막해요. 널려진 감자를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 지 엄두도 못 내겠고, 마음에 큰 부담이 됩니다.”, “막막하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네, 마치 평소 공부에 소홀한 제가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고 교과서를 폈을 때와 같은, 그런 막막함이요.”
“작업 중 자네의 그 막막함이 네 마음에서 언제 사라졌지?”, “네, 그 광활한 밭에 우리 학생들만 듬성듬성 섰을 때는 숨이 막힐 지경으로 막막했는데, 다른 인부들이 많이 와서 우리의 일을 거들 때 그 막막함이 사라졌어요. 갑자기 내 책임량이 줄어들어든 것 같은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아마 공부할 때 느끼는 막막함도 누군가가 나를 거들어주면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혼자라는 막막함에서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때 실마리가 풀림을 배웠습니다.” 이는 그 학생이 터득한 교육적 경험이다.
나는 막막함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학생에게 『토지』의 저자 박경리 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경리 씨는 남도의 섬진강을 끼고도는 ‘악양’이란 벌판에서 25년 간을 지내며 장편소설 『토지』를 집필했단다. 이는 어릴 적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세계사나 우주과학에 관한 책 등을 독서로 할애했고, 수도승 이상의 절제와 가난한 삶을 익힌 끝에 작품을 창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구나. 그가 『토지』의 배경이 되는 중국 용정을 한 번도 접하지 않고도 그곳을 충분히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삶 속에서 얻어낸 숱한 교육적 경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란다.”
학생들의 교육적 경험이 아직은 설익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바탕이 되어 폭발적인 에너지를 창출하리라 믿는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삶 속에서 얻어낸 교육적 경험을 통해 사고의 한계를 딛고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고,이것이 바로 인간 만들기 교육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