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부님 첫미사 강론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610 | 작성일 : 2008년 1월 28일
찬미예수님
우리는 오늘 박동순 요셉 신부님이 사제로 서품되어 주례하는 첫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론을 하는 저는 이 본당 출신 첫 사제이며 양업고등학교 교장 윤병훈 베드로 신부입니다.
먼저 박동순 요셉 신부님의 사제서품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봉헌해주신 어머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기쁨의 자리 덕분에 저를 사랑해주셨던 본당 신자 분들을 오랜만에 뵈올 수 있어 더욱 은혜롭고 반갑고 기쁩니다. 마침 오늘은 공교롭게도 제가 25년 전 오송 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던 날을 지내는 영광을 갖습니다. 그 때 ‘사제로 잘살겠습니다’ 하고 떠났었는데, ‘25년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라고 신자 분들께 보고 드리는 날 같습니다. 그래서 새 신부님의 첫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저로서도 이 자리가 특별한 자리이고 은총의 자리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새 신부님의 사제서품을 지켜보며 25년 전 제 사제서품의 초심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새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친애하는 교우여러분 다들 안녕하시지요. 교우 여러분께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본당 공동체가 성전을 짓고 재건하는 일, 복음을 전하여 하느님의 자녀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 신자들 가운데에서 신학생을 뽑아 사제를 양성하는 일은 교회공동체가 해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중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것은 교회가 이루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성업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일본의 오사카, 나고야, 동경, 홋카이도의 가톨릭교회가 세운 대학을 방문하면서 장학생으로 파견할 유학생 협약을 하며 몇몇 수도원에서 지냈습니다. 일주일을 지내면서도 일본인 사제를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겨우 90세 된 독일인 사제가 미사만을 힘들게 집전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한 사제를 끊임없이 양성해야 하는데, 일본에서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순교성인들 전구 덕분에 사제성소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며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제성소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부모님을 통하여 사랑하는 자녀를 봉헌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오늘 첫 미사를 봉헌하는 요셉 신부님이 사제성소에 대한 원의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모님이 간직한 신앙과 자녀에 대한 봉헌과 희생과 기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동안 아들 신부님을 교회에 봉헌해주시고 많은 희생과 기도를 드려주신 어머님의 노고에 존경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 신부님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와 청년시절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입니다. 새 신부님의 간결하고 차분한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신 부모님의 신앙이 새 신부님 안에 자라나 10년 동안의 신학교 교육을 통해 하느님의 지극한 인간 사랑을 배웠고, 이제 성령으로 충만한 사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향하여 이웃을 위해서 살아갈 최고의 가치를 담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의 신앙과 신학교 교육은 새 신부님을 아주 훌륭한 신부로 가꿔주셨습니다. 이는 교회에 더 없는 기쁨이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박동순 요셉 새 신부님!
저는 엊그제 새 신부님들의 서품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제가 신부님들의 미사에 참여한 것은, 새 신부님들이 탄생하기에 의무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사제들이 사랑스럽고 기쁘기도 하고 25년 전 제 사제수품을 기억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제로 서품될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요. 박동순 요셉!”하고 호명할 때, 신부님은 큰 소리로 “네, 여기 있습니다.” 라는 응답을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응답하며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을 지냈습니다. 순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아주 짧게만 느껴지는 25년이었습니다. 과연 그 부르심에 얼마나 부응하며 살았는가를 되새겨봅니다.
어제는 저의 아버지 신부님이신 윤기국 신부님께서 제가 25주년 은경축임을 아시고 투병 중이심에도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이스라엘 성지에서 보내 온 ‘십자고상’이었습니다. 아버지 신부님은 그 많은 선물 중에서 “왜, 도대체, 십자고상을 선물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선물의 의미는 사제서품 때, “네 여기 있습니다.”라는 응답을 잘하고 살라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의 지극한 하느님 사랑을 잘 실천하고 살라는 새로운 의미였습니다. 십자고상! 그 안에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신부님이 보내주신 “십자고상”을 마음에 간직하며 가슴에 품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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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박동순 요셉 신부님이 사제로 서품되어 주례하는 첫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강론을 하는 저는 이 본당 출신 첫 사제이며 양업고등학교 교장 윤병훈 베드로 신부입니다.
먼저 박동순 요셉 신부님의 사제서품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봉헌해주신 어머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기쁨의 자리 덕분에 저를 사랑해주셨던 본당 신자 분들을 오랜만에 뵈올 수 있어 더욱 은혜롭고 반갑고 기쁩니다. 마침 오늘은 공교롭게도 제가 25년 전 오송 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던 날을 지내는 영광을 갖습니다. 그 때 ‘사제로 잘살겠습니다’ 하고 떠났었는데, ‘25년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라고 신자 분들께 보고 드리는 날 같습니다. 그래서 새 신부님의 첫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저로서도 이 자리가 특별한 자리이고 은총의 자리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새 신부님의 사제서품을 지켜보며 25년 전 제 사제서품의 초심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새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친애하는 교우여러분 다들 안녕하시지요. 교우 여러분께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본당 공동체가 성전을 짓고 재건하는 일, 복음을 전하여 하느님의 자녀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 신자들 가운데에서 신학생을 뽑아 사제를 양성하는 일은 교회공동체가 해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 중에서 사제를 양성하는 것은 교회가 이루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성업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일본의 오사카, 나고야, 동경, 홋카이도의 가톨릭교회가 세운 대학을 방문하면서 장학생으로 파견할 유학생 협약을 하며 몇몇 수도원에서 지냈습니다. 일주일을 지내면서도 일본인 사제를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겨우 90세 된 독일인 사제가 미사만을 힘들게 집전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한 사제를 끊임없이 양성해야 하는데, 일본에서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순교성인들 전구 덕분에 사제성소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며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제성소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부모님을 통하여 사랑하는 자녀를 봉헌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오늘 첫 미사를 봉헌하는 요셉 신부님이 사제성소에 대한 원의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부모님이 간직한 신앙과 자녀에 대한 봉헌과 희생과 기도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동안 아들 신부님을 교회에 봉헌해주시고 많은 희생과 기도를 드려주신 어머님의 노고에 존경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 신부님의 아버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와 청년시절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입니다. 새 신부님의 간결하고 차분한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신 부모님의 신앙이 새 신부님 안에 자라나 10년 동안의 신학교 교육을 통해 하느님의 지극한 인간 사랑을 배웠고, 이제 성령으로 충만한 사제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향하여 이웃을 위해서 살아갈 최고의 가치를 담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의 신앙과 신학교 교육은 새 신부님을 아주 훌륭한 신부로 가꿔주셨습니다. 이는 교회에 더 없는 기쁨이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박동순 요셉 새 신부님!
저는 엊그제 새 신부님들의 서품미사에 함께 했습니다. 제가 신부님들의 미사에 참여한 것은, 새 신부님들이 탄생하기에 의무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사제들이 사랑스럽고 기쁘기도 하고 25년 전 제 사제수품을 기억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제로 서품될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요. 박동순 요셉!”하고 호명할 때, 신부님은 큰 소리로 “네, 여기 있습니다.” 라는 응답을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응답하며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을 지냈습니다. 순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아주 짧게만 느껴지는 25년이었습니다. 과연 그 부르심에 얼마나 부응하며 살았는가를 되새겨봅니다.
어제는 저의 아버지 신부님이신 윤기국 신부님께서 제가 25주년 은경축임을 아시고 투병 중이심에도 선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이스라엘 성지에서 보내 온 ‘십자고상’이었습니다. 아버지 신부님은 그 많은 선물 중에서 “왜, 도대체, 십자고상을 선물하셨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선물의 의미는 사제서품 때, “네 여기 있습니다.”라는 응답을 잘하고 살라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의 지극한 하느님 사랑을 잘 실천하고 살라는 새로운 의미였습니다. 십자고상! 그 안에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신부님이 보내주신 “십자고상”을 마음에 간직하며 가슴에 품어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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