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들어 올려질 때에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413 | 작성일 : 2008년 2월 28일

                            십자가에 들어 올려질 때야

  인간이 참 똑똑한 것 같은데 어리석다. 왜냐하면 늘 살고 나서 후회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속을 썩일 때면, 아이를 원망하거나 혹은 부부가 서로 당신을 닮아 그렇다고 원망을 한다. 아이가 가출을 하고 등교 거부를 할 때면 부모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썽부리는 아이를 문제아라고 단정 짓는다. 부모는 자녀를 강제해 보지만 아이가 변화할 리가 없다. 부부학도, 자녀교육론도 배워보지 못하고 시집, 장가든 부모가 자녀에게 해 주는 것은 ‘해라’, ‘하지마라’ 라는 말 뿐이다.
  다르게 좀 생각해 보자. 자녀가 부적응한 것은, 철부지 부모가 좀 성숙하게 변해보라는 사인(sign)이다. 남과 비교하는 말이나 실망스런 말, 그리고 자녀를 향한 비난은 자녀에게 자살 충동과 상처를 선물한다. 아이는 외친다. “너희들, 정말 맛 좀 볼래.” 부모를 변화시키려 가출하고 등교거부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솔직한 심정은 그렇다. 자녀가 가져다 준 고통은 부모를 십자가에 매단다. 십자가를 관통한 부모는 제법 자녀를 기다리고, 칭찬하고 관심과 사랑으로 격려해주면 어깃장을 푼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십자가를 매고 사시는 분이다.
  하느님께서도 인류를 위해 생 속을 썩으시며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높이 올려질 때에야 비로소 어리석은 인간들은 깨닫는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27.54) 부모님이 십자가에 들어 높여질 때 또 다른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자기가 낳은 자녀를 기르게 된다. 인생역사가 그렇게 많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다.(요한 3,7,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