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아이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01 | 작성일 : 2007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일(07.10.28) 제485
아침을 여는 아이들
철학적인 의미로 ‘생성’은 사물이 그 상태를 변하여 다른 것이 됨을 말한다. 어떤 생명이든 가능태로부터 시작하여 현실태로 변화하는 적극적 활동을 거치면서 생성이 진행되어 간다.
고요한 아침을 여는 소리가 있다. 고속 열차가 달리는 소리,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 공장 가동 소리들……. 그 안에서 자연을 깨우는 청정하고 신선한 산새소리도 한몫을 한다. 내가 사는 산골의 아침은 이런 소리들 밖에는 없었는데, 요즘 분명 다른 소리가 생겨났다. 짙은 안개를 뚫고 아침을 여는 ‘우리 아이들 발자국 소리’였다.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는 마치 자기들이 살아있음을 당당하게 세상에 알리려는 듯 내 귀를 울렸다. 어미가 고통 끝에 새 생명을 세상에 낳아주었을 때의 기쁨처럼 우리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오랜만에 들었을 때, 그들의 생명과 함께 나도 뛰놀았다.
어른에게도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단어들이 있다. ‘좋은 생각’, ‘자기 주도적’, ‘자발적’, ‘자기통제’, ‘좋은 선택’이 그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결코 아이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어른들의 생각이지만, 이 학교는 설립부터 우리 아이들은 이런 단어들을 꼭 이루어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매달렸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11.10)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기도하며 기다렸는데, 아이들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11.13) 나는 고통 중에도 아이들이 ‘좋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묵묵히 그들에게 교육적 경험을 마련해 주며 살아 왔다.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명령, 지시, 간섭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존중하며 사랑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하느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넣어 주셨고, 그 기운은 아이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셨다. 그 열매는 ‘자기 주도적’이라는 성령의 열매이며, 그것으로 인해 아이들이 이른 아침을 힘차게 여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변화는 채색된 가을만큼이나 아름답다.
길고 긴 10년을 살아 온 대안학교 양업은, “임마누엘”(마태1.23)이신 하느님께서 넉넉하게 담아주신 성령의 열매들로 넘쳐나고 좋은 목표치로 상승하고 있다. 이는 양업학교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생성이다. 아침을 여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더 크게 또 다른 모습으로 ‘생성’ 될 것이다. 이 모두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맡겨드리며, 그분께 청하고, 찾고, 두드릴 것이다.
아침을 여는 아이들
철학적인 의미로 ‘생성’은 사물이 그 상태를 변하여 다른 것이 됨을 말한다. 어떤 생명이든 가능태로부터 시작하여 현실태로 변화하는 적극적 활동을 거치면서 생성이 진행되어 간다.
고요한 아침을 여는 소리가 있다. 고속 열차가 달리는 소리,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 공장 가동 소리들……. 그 안에서 자연을 깨우는 청정하고 신선한 산새소리도 한몫을 한다. 내가 사는 산골의 아침은 이런 소리들 밖에는 없었는데, 요즘 분명 다른 소리가 생겨났다. 짙은 안개를 뚫고 아침을 여는 ‘우리 아이들 발자국 소리’였다.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는 마치 자기들이 살아있음을 당당하게 세상에 알리려는 듯 내 귀를 울렸다. 어미가 고통 끝에 새 생명을 세상에 낳아주었을 때의 기쁨처럼 우리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오랜만에 들었을 때, 그들의 생명과 함께 나도 뛰놀았다.
어른에게도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단어들이 있다. ‘좋은 생각’, ‘자기 주도적’, ‘자발적’, ‘자기통제’, ‘좋은 선택’이 그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결코 아이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 어른들의 생각이지만, 이 학교는 설립부터 우리 아이들은 이런 단어들을 꼭 이루어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매달렸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11.10)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기도하며 기다렸는데, 아이들 속에서 성령의 열매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11.13) 나는 고통 중에도 아이들이 ‘좋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묵묵히 그들에게 교육적 경험을 마련해 주며 살아 왔다. 학생들을 비난하거나, 명령, 지시, 간섭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존중하며 사랑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하느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넣어 주셨고, 그 기운은 아이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셨다. 그 열매는 ‘자기 주도적’이라는 성령의 열매이며, 그것으로 인해 아이들이 이른 아침을 힘차게 여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변화는 채색된 가을만큼이나 아름답다.
길고 긴 10년을 살아 온 대안학교 양업은, “임마누엘”(마태1.23)이신 하느님께서 넉넉하게 담아주신 성령의 열매들로 넘쳐나고 좋은 목표치로 상승하고 있다. 이는 양업학교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생성이다. 아침을 여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더 크게 또 다른 모습으로 ‘생성’ 될 것이다. 이 모두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맡겨드리며, 그분께 청하고, 찾고, 두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