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 깨진 리더십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44 | 작성일 : 2007년 11월 16일

연중 제31주일(07.11.4)                                                    제486호

인성이 깨진 리더십

  우리는 아침마다 뉴스 속에서 모범적인 위치에 있어야 할 지도자들의 깨진 인성, 손상된 리더십의 지도자를 자주 본다. 인성이란 자기를 신뢰함이요,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역량이 내재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에 대한 믿음이 서질 않는다면, 그 깨어진 믿음 때문에 역량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게 된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권한부여(empowerment)가 되겠는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들에 넘어져 인성을 무너뜨리곤 한다. 거짓증언, 뇌물수수, 수많은 불륜들이 그 요인들이다. 인성이 깨지면 한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의 리더십은 자기 믿음과 존중이라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즉, 신뢰는 자신을 믿는 것이며, 이는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이다. 자기 신뢰가 튼튼해서 타인에게 드러날 때면, 그 신뢰는 역량을 크게 발휘하게 해 준다. 각 사람의 리더십은 신뢰로 출발하며 신뢰를 통하여 타인과 함께 조직 안에서 결속할 때에, ‘그는 리더십이 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희망적으로 살아가다가도 그 사람의 신뢰가 왕창 깨질 때가 있다. 이는 치명적이다. 그러기에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속이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충만히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청문회를 지켜보며 예리한 질문이 거듭될 때마다 한 개인의 인성이 파헤쳐진다.  요즘 깨끗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손상된 인성은 자기 스스로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복음에서 나오는 세관장 자캐오(루카19.1-10)는 인성에 금이 간 사람이고 리더십에 손상이 가해진 대표적 사람이다. 외적으로는 부유하나 내적으로는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이다.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그를 가장 불쌍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런 그는 텅 빈 공허함을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메꿀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만든 ‘도덕의 간극’으로 겪는 고통은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어느 날인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세관장 자캐오의 집에 들어가 머무르신다.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만은 그들 신뢰하며 바라보신다. “도덕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는 절박성을 지닌 그가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예수님과 마주친다. 이 은혜로운 만남으로 예수님께서는, “오늘 내가 너희 집에 머물러야하겠다.”(루카19.5)라는 말씀으로 대해주신다. 이 말씀 한 마디로 영적치유가 일어난다. 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역량이 다시 채워진다.
  우리는 유혹으로 말미암아 크고 작게 인성이 깨질 때가 있다. 신뢰도 역량도 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신뢰와 역량을 내 자신에게서 지워버린 모습을 보며, 하느님과 멀리 그래서 세상을 향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절박성과 공허한 마음에 자리 잡은 고통은 예수님을 청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분을 통하여 자기에 대한 믿음도 생겨나고 역량이 살아나게 된다. 이 어찌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인생 여정에서 정도를 걷다가도 때로는 일탈을 하여 공허해졌음을 그 분께 보여드려야겠다. 그러면 깨진 인성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