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분 좋은 일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200 | 작성일 : 2006년 11월 22일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하느님의 축복 속에 금년에도 많은 학생들이 우리학교를 지원하여, 일찍이 신입생 40명을 확정지었다. 금년에도 ‘태어남’이 좋다. 또한 고3학생들의 경우, 희망하는 좋은 대학에 많이들 합격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학부모나 학생들은 좋은 학생들이 선발되었다며, 3학년들의 대학진학도 매우 잘 되었다며 행복해 한다. 가정이나 사회, 국가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좋은 태어남을 보면 이는 큰 축복과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자라남의 과정에서 교육의 목적을 그들에게서 본다면 이는 더욱 큰 경사일 것이다. 이 경사를 놓고 공동체는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신입생들에게 면접 시에 지원 동기를 묻자,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일정량 외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통제 보다는, 이곳에서 나 자신의 내적통제력을 기르는 3년의 과정을 성실히 살려고 합니다.’ 라고 많은 학생들이 말했다. 이런말을 듣는 일은 학교 경영자로써 기쁜 일 중의 하나이다. 이런 모습은 매우 발전적이고 희망적이다. 과거에 많은 학생들의 경우, “공교육이 무조건 싫다”라는 지원동기를 내어 놓았지만, 대안학교에 와서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기만 하였다. 물론 오늘의 지원자들도 별로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자발성을 지니며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각오를 피력함은 매우 고무적이고 대단한 발전을 예고한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매번 교육의 현장은 한 개인을 놓고 ‘과연 교육할 수 있을까?’ 하는 교육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 나이 수준에 맞지 않게 지식의 영역에서 ‘수준이하’, ‘개념도 없다’, ‘바보스럽다.’ 하는 함량미달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교육받으며 그 나이에 걸맞게 자기 성장과 성숙을 도모해야 하는데, 지식 즉 앎의 영역을 넓혀가지 못해서 늘 하위의 개념인 본능에 머물러 일차적인 욕구만을 답습하며 허우적댔던 것이다. 공부는 왜 하려하는가? 그 나이에 걸맞은 수준에 이르도록 해서 인간다운 인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줄 아는 사회인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기실현을 게을리 하며 일차적인 욕구만을 거듭하고 허우적댄다면, 이는 자긴 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민폐를 끼칠 뿐이다. 교육받지 않는 사람처럼 윤리성도 없이 행동한다면 다 자라버린 학생을 지금 와서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타날 교육의 목적을 과정 안에서 성실하게 이루지 못한 결과는 치명적이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이제 학생들이 질적으로 향상되어가니 어느 정도 ‘주도적’, ‘자발적’이란 단어도 현실감을 갖게 되었다. 입학 면담 때 대부분 학생들이 마치 성숙한 사람처럼 곧잘 말하는 것도 내면을 드려다 보면 금방 탄로 날 일이지만, 자기통제를 한다면서도 주도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나 자신이 기분이 매우 좋다.</FONT> </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하느님의 축복 속에 금년에도 많은 학생들이 우리학교를 지원하여, 일찍이 신입생 40명을 확정지었다. 금년에도 ‘태어남’이 좋다. 또한 고3학생들의 경우, 희망하는 좋은 대학에 많이들 합격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학부모나 학생들은 좋은 학생들이 선발되었다며, 3학년들의 대학진학도 매우 잘 되었다며 행복해 한다. 가정이나 사회, 국가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좋은 태어남을 보면 이는 큰 축복과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자라남의 과정에서 교육의 목적을 그들에게서 본다면 이는 더욱 큰 경사일 것이다. 이 경사를 놓고 공동체는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신입생들에게 면접 시에 지원 동기를 묻자,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일정량 외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통제 보다는, 이곳에서 나 자신의 내적통제력을 기르는 3년의 과정을 성실히 살려고 합니다.’ 라고 많은 학생들이 말했다. 이런말을 듣는 일은 학교 경영자로써 기쁜 일 중의 하나이다. 이런 모습은 매우 발전적이고 희망적이다. 과거에 많은 학생들의 경우, “공교육이 무조건 싫다”라는 지원동기를 내어 놓았지만, 대안학교에 와서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기만 하였다. 물론 오늘의 지원자들도 별로 특별하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자발성을 지니며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각오를 피력함은 매우 고무적이고 대단한 발전을 예고한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매번 교육의 현장은 한 개인을 놓고 ‘과연 교육할 수 있을까?’ 하는 교육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그 나이 수준에 맞지 않게 지식의 영역에서 ‘수준이하’, ‘개념도 없다’, ‘바보스럽다.’ 하는 함량미달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교육받으며 그 나이에 걸맞게 자기 성장과 성숙을 도모해야 하는데, 지식 즉 앎의 영역을 넓혀가지 못해서 늘 하위의 개념인 본능에 머물러 일차적인 욕구만을 답습하며 허우적댔던 것이다. 공부는 왜 하려하는가? 그 나이에 걸맞은 수준에 이르도록 해서 인간다운 인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줄 아는 사회인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 목적을 향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기실현을 게을리 하며 일차적인 욕구만을 거듭하고 허우적댄다면, 이는 자긴 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민폐를 끼칠 뿐이다. 교육받지 않는 사람처럼 윤리성도 없이 행동한다면 다 자라버린 학생을 지금 와서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타날 교육의 목적을 과정 안에서 성실하게 이루지 못한 결과는 치명적이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1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000000; LINE-HEIGHT: 17.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 size=2> 이제 학생들이 질적으로 향상되어가니 어느 정도 ‘주도적’, ‘자발적’이란 단어도 현실감을 갖게 되었다. 입학 면담 때 대부분 학생들이 마치 성숙한 사람처럼 곧잘 말하는 것도 내면을 드려다 보면 금방 탄로 날 일이지만, 자기통제를 한다면서도 주도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나 자신이 기분이 매우 좋다.</FONT> </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