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꽃이 필 무렵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95 | 작성일 : 2005년 8월 13일

농부들이 논두렁 풀을 단정히 하면 실하게 자란 벼들이 춤을 추듯 너울거리며 꽃을 피워낸다. 벼 이삭의 꽃술이 바람에 날리고 수정이 되면 가을의 들녘도 풍성하게 될 것이다. 절기상으로 입추를 지냈다. 산등성이마다 피어난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고추잠자리가 무리를 지어 더욱 높이 하늘을 날면 전초병처럼 가을을 알릴 것이다. 늘 그랬지만 한 해가 또 불볕에 익어가고 있다. 엊그제의 모내기가 어느 사이 벼이삭을 드러내고 무더위 속에서도 입추임을 실감한다. 인간을 포함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때를 기다리며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하루살이, 1년 초, 다년 초, 80년을 실히 사는 인간... 이 모든 것의 무르익음은 모습이 다르고 생의 기간이 길고 짧은 것 외에는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농부가 식물을 심고 거름을 주고 때를 잘 맞추어 주면, 모두들 때를 따라 열매를 맺어간다. 동식물은 태어나 자라면서 인간처럼 고통에 호소하는 아우성 소리만 없을 뿐이다. 사람은 식, 동물과 달리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식, 동물과 마찬가지로 때를 따라 성장한다. 이는 창조주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으로의 인간에 대한 배려이다. 하느님은 생명에 때를 제정해 주시고 그 때를 따라 건강히 살도록 배려해주시고, 생명이 풍성하고 싱싱하게 자라나도록 관리자를 붙여주셨다. 건강하게 자라난 벼들을 바라보며 용케도 좋은 농부를 만나 제 때에 심어지고, 거름 얻어먹고, 잡초로부터 보호받고, 온갖 병충해를 극복하게 하여주고 비바람, 심한 태풍에도 용케도 서있도록 때를 따라 보호받았기에 우리는 오늘의 대견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라다가 병충해에 시달리고, 비바람에 쓰러지고, 물에 잠기고, 소출을 내지 못한 쭉정이를 보기도 하는 것처럼 인간도 똑 같이 때를 놓쳐 쭉정이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도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 풍부한 마음과 육신을 만들어 주는 농부가 있다. 살아갈 때 잡초를 뽑아주고 온갖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태풍에도 잘도 견디어내며 당당히 서 있도록 지지해주는 농부가 있다. 인간 본성 안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들을 뽑아주며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농부가 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끊임없이 버티고 끝까지 서 있도록 채찍질하며 지지해주는 농부가 있다. 이런 성실한 농부를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고 은총이다. 살다가 목표가 불분명하여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가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 노래처럼 돼버린 사람이 너무도 많다. 농부가 자기가 맡은 생명의 때를 모르고 놓쳐버린다면 그 생명은 더욱 처참하게 주저앉아 버리게 된다. 농부는 자기가 맡은 생명의 때를 맞추고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 영양분이 부족해서, 지지할 사람이 없어서, 비바람에 우산을 받쳐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서 끝내 결실을 내지 못하고 스러지는 생명을 너무나 많이 본다. 그러기에 농부들은 생명을 위해 결코 게으를 수 없다. 제 때에 필요한 작업들, 時를 타투며 생명을 보듬던 농부들을 생각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농부들처럼 모든 이가 생명의 때를 알고, 생명을 보듬는다면 더욱 훌륭하게 자랄 텐데. 어쩌면 많은 경우 때를 모르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 이삭이 패고 있는데 엇배기 농사꾼이 비료를 주고 있다. 지나던 훌륭한 농부가 말을 걸었다. “여보게! 무슨 거름을 이제 주는가?” “하! 이것 말인가? 이삭거름일세” “아니, 이삭이 패고 있는데 웬 이삭거름인가? 이삭거름은 이삭을 만들기 위해 도와주는 거름인데 너무 늦었네그려.” 모든 생명은 다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생명은 영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되는 것이다. 동식물의 농사꾼처럼 인간의 생명을 위한 농사꾼도 훌륭한 전문가가 되어야 할 텐데. 손자 녀석이 태어나서야 조금 인간 농사법을 알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인간 농사꾼이 되기 위해 나는 영농일지를 매일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