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물주기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420 | 작성일 : 2006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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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가정마다 화분을 잘 관리하여 삭막한 주거공간을 싱싱하게 가꾸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화초들을 가꾸고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감싸고 자라는 크고 작은 나무들, 실내를 생명력 넘치게 하는 화초들 덕분에 삭막함 대신에 평온함과 건강함을 주어 좋다. 그런데 그런 고마움을 주는 생명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음을 본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FONT> <FONT face=돋움체>누군가가 혼자 관심과 사랑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이외 구성원들은 그 생명들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내기 일쑤다. 아마도 내 영역 밖의 일이라 여기면, 나와는 무관심하게 된다.</FONT></SPAN> </FONT></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nbsp;&nbsp;어느 여름날, 한 엄마가 자녀에게 화분에 물을 잘 주라는 주문을 하고 집을 비웠다. 엄마는 두 개의 화분에는 생화 같은 조화를 담아 놓았고, 두 개의 화분에는 조화 같은 생화를 피어내는 화분을 놓고는 자신이 없는 동안 화분에 물을 잘 주라는 말을 남겼다. 딸은 물주기의 방법을 엄마에게 배웠지만 성숙한 훈련과 습관이 익지 않아, 화분에 물이 넘치도록 후하게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하루 종일 물을 주지 않아 화초가 시들어서 생명의 위기를 겪게 하였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 왔을 즈음, 생명의 위기를 반복하던 두 개의 화분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와서는 딸아이를 불러 세우며 “화초가 죽었구나!” 하자, 딸아이가 미안한 표정을 하고 “글쎄요 4개의 화분에다 똑같이 물을 주었는데, 이놈들은 죽어버렸네요. 두 놈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인가요?”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딸아이에게 “예야! 저 싱싱한 두개의 화초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란다. 그것을 처음부터 알지 못했니?” 딸아이는 그때서야 싱싱하게 살아 있는 듯한 화초가 조화라는 것을 알고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죽은 화초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물을 주어라“ 라는 주문에 사랑과 관심은 없고 의무감으로 아무 생각 없이 물을 주었던 결과는 생명을 죽이게 된 것이다. </FONT></SPAN></P>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t; COLOR: #000000; TEXT-INDENT: 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16pt;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t; TEXT-ALIGN: justify"><FONT face=돋움체>&nbsp;&nbsp;우리는 일상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누군가로부터 부여 받고 자기에게 맡겨진 생명을 잘 관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우리가 그 명령을 받고 딸아이처럼 화초를 받아들고는 의무감으로 아무 생각 없이 대한다면 외형은 살아있는 조화처럼 싱싱하게 드러날지는 모르지만 정작 내부의 살아 있는 생명은 위기를 거듭하며 제대로의 생명을 발휘할 만큼 서 있지 는 못할 것이다. 지금 모두가 아우성이다. “사랑과 관심을 나에게 쏟아주시오.” 라고 세상은 요구하지만 내 귀한 생명처럼 남에게 풍요한 생명을 갖게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성체성사의 신비는 우리 삶 안에서 피어나야 한다.</FONT> </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