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 십자가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85 | 작성일 : 2009년 4월 10일

                                              내가 진 십자가

 벌써 10년 전쯤, 대안학교를 세운다며 정신없이 지내던 때였다. 학교의 신축 부지는 마련했지만, 지역민의 심한 반발로 신축 계획이 지연되고 있었다. 일의 진척을 위해 각방으로 노력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골치만 아팠었다. 나는 일이 이렇게 지연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구실을 찾고 있었을 때였다. 계획에 대한 그런 미온적인 태도를 읽었는지 한 선배 사제는, “말만 무성하게 해놓고는 그렇게 있어야 되느냐, 일을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만일 계획이 취소되면 교회는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라며 쓴 소리를 했다. 그 조언은 나를 정신 나게 하여, 하느님께서 내게 담아주신 거룩한 뜻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고 비상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즉시 소임이동이 되어 나는 학교부지가 있는 삶의 장소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 마음다짐을 넘어서는 문제들이 많았고, 근사한 청사진을 꺼내놓고 무에서 유를 이룬다는 것이 끝이 보이지 않아, 점점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고만 싶었다. 교구는 선뜻 나서길 힘들어 하는 나에게 직언은 하지 않았지만, “네가 시작한 일이니 네가 책임져라.” 라는 무언의 느낌으로 나를 강하게 압박했다. 물론 내가 선언한 일이고 그 일은 내 몫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엉거주춤 십자가를 질까 망설이며 마음을 비우지 못했었다. 그 때 동료사제의 강력한 조언은 생각을 바꾸는 데 적시타가 되었다. 그랬기에 나의 역부족이고 무능력한 마음에 커다란 용기를 심었고, 십자가를 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게 된 십자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시적인 기쁨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에 주변의 탓을 구실로 주어진 십자가를 없었던 것으로 여겨 버렸더라면, 내가, 그리고 교회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기까지 하다. 내가 진 십자가는 학교에 관심을 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 태어나게 했다. 더욱 다행스런 점은 교회가 대 사회에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담아주신 십자가는 나와 모든 이에게 축복이 되고 은총임을 깨우쳐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믿음을 지니며 미지를 향한 십자가의 행군은 부활을 안겨주셨다.
 그러기에 십자가가 무겁다고 어떤 구실을 달아 십자가를 벗어 놓아서는 안 된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믿음을 키워주었고 약속의 땅에 마련한 부활을 보여주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들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6)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강생은 십자가에서 극에 달해 완성된다. 하느님의 인간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다. 매일 거행하는 미사성제는 하느님의 인간 사랑을 위한 또 하나의 십자가를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이 마련하신 식탁에서 당신이 손수 마련하신 예수님의 몸을 존귀한 음식으로 우리에게 먹여주신다. 그러기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는 그분께서 마련하신 식탁을 이웃에게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런 희생으로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 사랑에서 배운  본보기이다. 나에게 지워진 십자가는 이웃의 사랑을 위해 있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을 소명으로 여길 때, 하느님께서는 더 없이 기뻐하시고 우리를 영광으로 들어 높이시며 축복해 주신다. 무거운 십자가라 하더라도 피하지 말고 내 안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부활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쫒아 끝까지 지고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