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아이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370 | 작성일 : 2004년 12월 10일

아날로그 방식은 단순 기능이라면, 디지털 방식은 복합 기능이다. 요즘 시판되는 휴대폰은 그 기능이 매우 복잡해서 어른들이 그 기능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문자 송수신 기능, 게임ㆍ동영상 등 각종 인터넷 기능, MP3(음악 재생 기능), 카메라, 오디오, TV 기능 등 너무나 다양해서 사용하는데 있어서 나는 무척 거북스러움을 느낀다. 어른들의 사고는 한 부분씩 생각하고 처리하지만 청소년들은 다기능의 휴대폰처럼 한꺼번에 여러 생각들을 하며 일을 처리한다. 개그 프로그램 ‘봉숭아 학당’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은 서로 다른 시각으로 대화한다. ‘봉숭아 학당’의 분위기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른과 아이들이 만나는 장소면 어디든 나타난다. 둘의 관계에서 어른의 주장은 무력해지고 이내 학생들의 아수라장이 된다. 시간개념이 없어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에 5분, 10분 늦게 나타나며 제멋대로 교실을 들락거린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삐거덕 문 여는 소리, 책가방 던지는 소리, 의자 부서지는 소리... 야단을 치면 잠시 조용해졌다가 이내 산만해진다. 볼펜 돌리기, 책상 바닥 긁기, 발 흔들고 떨기... 정서 불안증처럼  보인다. 이는 도덕적 훈련이 전혀 안 된 디지털 시대의 병적 증후군이다. 몸은 교실에 있지만 마음은 공상 속을 헤매며 빈손으로 버틴다. 좋은 수업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휴대폰을 스스로 반납하기로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다기능의 게임과 동영상이 휘돌고 있다. 불안한 심리에 몸은 부정기적으로 바스락댄다. 이미 기계에 구속되어버린 속이 허한 바보들이 된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마련된 고급 프로그램이 아깝다. 바탕이 잘못 형성되어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버린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고등학생들에게는 무척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어른들은 자녀들이 책만 넘기고 있으면 교육의 목적이 달성되는 줄 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무엇이 공부인지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강제한다. 오직 공부만을 위해 자식을 상전 모시는 일을 계속한다. 허물 벗듯 벗어놓은 옷가지들이며, 널브러진 이불, 수북이 쌓인 쓰레기 먼지들, 때 되면 날라다 주는 밥, 대신 해주는 숙제와 봉사활동... 부모는 은연중에 자식들에게 무기력과 의존성을 전수하는지도 모른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습득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형성된 나쁜 습관들이 괴변을 늘어놓는다. 때와 장소를 고려치 않고 마구 휴지를 버리고, 복도에 껌과 침을 뱉고, 지적하면 청소부는 뭐 하느냐고 오히려 따지려 든다. 공부를 지겨워하여 휴대폰을 재빠르게 누르고 즐거워하며, 나아가 대입수능까지 부정을 저지르는 똑똑히 자녀들을 만들었다. 들어보면 별 내용은 없는데 송수신 비 날리며, 동영상 보고, 카메라 눌러대는 것에 부모는 용돈을 주며 자녀의 즐거움을 채워가는 한 수단이 돼버리고 말았다. 어른의 훈계는 잔소리로 고사되고 더 이상 교육은 무게를 갖지 못한다. 자녀를 약삭빠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지혜롭고 현명한 자녀를 만들 수는 없게 되었다. 시대는 분명 디지털 시대이다. 그 디지털이 인간의 정신성 고양을 위해 제대로 사용되어졌으면 한다. 교육만은 시대에 뒤지더라도 아날로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정을 중시하며 단계적으로 하나씩 목적을 성취할 능력을 기른 다음에 지적인 것을 담아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이 수능 부정으로 곤혹스럽다. 대학진학의 과제마저도 디지털로 해결하려는 똑똑함이 인간을 황폐케 하고 망치게 했다. 뛰어난 지능은 돋보이지만 지혜로런 인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