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인가 봅니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13 | 작성일 : 2005년 2월 19일

예쁜 숙녀가 시골학교를 찾아왔다. 갑자기 교무실이 시끄럽다. 누가 온 것일까? 졸업생이었다. 인공적인 모습을 벗고 자연의 순수한 옷을 입어 금방 알아채지 못했는데 무척 반가웠다. 이산가족의 상봉만큼이나 기뻐 얼싸 안았다. 너무나 의젓하게 변한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8년 전 처음 보았을 때, 말과 행동이 너무나 상식을 지나쳐 황당하여 기절할 것만 같았는데 오늘은 그의 모습에서 평화스러움이 물씬 묻어나왔다. 벌써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나 보다.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할 때가 다 되어 인사를 드리러 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당시엔 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정년이 되어 집에 계시다고 했다. 반가운 분위기가 좀 진정이 되자 바로 옛날이야기로 들어가 이야기가 무르익고 기억에 남은, 학생이 했던 말을 들려주자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말은 아버지를 향한 비아냥거림이었는데 이런 말이었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 선생들은 참 불쌍할 거야. 잔소리가 무척 심할 텐데…….”라는... 멋쩍은 표정으로 지난 온 날들을 지우개로 싹 지우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저와 아버지의 냉전관계 시절은 지나고 보니, 그게 바로 서로가 읽을 수 없었던 세대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에는 아버지의 훈육이 늘 간섭과 통제, 지겨운 설교적 훈육이라 생각했지요. 아버지의 훈육이 지겹기만 하고 그 땐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짜증 투성이였습니다. 당시엔 왜 그리 간섭이 싫었던지 공부가 싫은 것이 아니라 솔직히 아버지의 간섭이 싫었습니다. 지금은 청개구리 심보로 반항했던 것이 부모님께 많은 후회가 됩니다.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똑같이 간섭을 하십니다. 지금은 제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그 동안 어떻게 지냈니?”, “교수님 덕분에 지금껏 살아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악연도 다 끊고 그 동안 밀렸던 공부만 했습니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사람 됐다고 기뻐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교사라는 것이 싫다던 놈이 이젠 덩달아 교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였다. 젊은 시절 잠시 자라다가 구부러진 길을 새롭게 펴고는 싱싱하고 풋풋한 젊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수녀님들과 선생님들이 담소를 나눈다. “참 좋은 학교였어요. 마음의 고향이지요. 제가 어려워서 힘이 들 땐 아무도 없는 교정이지만 돌아보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날 그때 함께 했던 참새들이 이 방, 저 방에서 쏘옥 나와 금방 수다를 떨 것도 같고 다정한 선생님들이 손짓하며 “너 왔니?”하며 다정히 포옹 해 줄 것만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문득 목자와 양의 관계를 생각했다. 목자가 우리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까? 찾을 때까지의 겪는 고통이 말도 할 수 없이 힘들지만 찾았을 때의 기쁨은 그 동안의 고통을 다 삭혀주는 동시에 목자의 소임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됨을 발견한다. 
  사랑이라는 동력은 인공적 가면을 벗게 하고 자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만들고, 더욱 큰 인간증축의 발판이 된다. 고통이 있기에 그것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껴안기 위해 더 없이 사랑하는가 보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성이며 눈물짓는 이런 것이 부모의 심정일까요. 신부라서 잘 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