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좀 만납시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90 | 작성일 : 2004년 7월 9일

옹기종기 모여 살던 정겨운 농촌마을, 제법 먼 거리를 세월아 네월아 하며 장 구경 떠나던 동네 사람들, 마차와 자전거가 고작 교통수단이지만 그렇게 부자처럼 느껴지던 시절. 방학이면 친구들과 냇가에서 해 지도록 고기잡고 물장구치던 일들. 터벅이며 비포장 신작로가 지루한 속에 짓궂게도 뽀얗게 먼지를 피우며 나타난 자동차 뒤를 따라 달리던 일들. 일철이 되면 온 동네가 도란도란 정겹던 모습. 어른들을 동네 어귀에서 만날 때면 공손히 인사를 드리며 '누구 아들이여'하며 머리를 쓰다듬던 어른 분들이 좋았던 일들. 위아래를 알고 예의를 차리며 등하교 길이 멀어 힘든 속에 함께 어깨동무하며 다니던 모습들... 비록 그 시절은 없이 살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해하며 살았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 리얼하게 설명을 해보지만 그들에게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만한 흥밋거리가 못 된다. 가난이 무엇인가를 체험해보지 않은 아이들. 한번 신고 버린 운동화. 운동장에 버려진 새 옷가지들. 아직도 쓸만한 학용품들이 마구 나뒹군다. 먹다 버린 잔반들, 마음껏 먹어대고 버린 인스턴트 찌꺼기들, 임자 없이 버려진 생활용품들, 어느새 소비가 미덕이 되어 잘 사는 나라도 아닌데 아이들은 절약이라는 단어를 이미 머릿속에서 지웠다. 절약을 호소해보지만 그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우리들에게 과거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는 없는지 고민을 하다가 찾아낸 것이 중국 연변이었다. 악취나는 재래식 변소며, 입맛에 들지 않는 음식들, 누추한 잠자리... 가난의 때가 묻어나는 그 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지만 머리속에 계산된 생각 이상으로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02년도 북한방문 때의 일이다. 평양, 사리원, 묘향산, 그리고 멀리 양강도의 백두산을 돌아보면서 또렷이 남아 있는 옛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비록 무척 가난은 해보였지만 그들을 품고 있던 자연과 사람들이 살을 맞대고 무리지어 걸어서 출퇴근하던 모습. 중국에서의 거대한 자전거 물결이 무척 활기차 보였다.

많이도 살기 좋아진 이 나라. 오늘 물질적으로 잘 살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리며서도 한편으론 겉으로만 부폴려진 흉한 모습을 보게 된다. 흥청망청한 가운데 소중한 인간관계는 산산이 부서진 채로 인면 수심의 모습을 하고 각박해지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다. 숨가쁜 경쟁의 템포는 가속화되고 숨고를 여유가 쉽지 않다. 한강 투신자살, 서해대교 투신자살도 마찬가지이다. 가슴이 답답해온다. 단절된 아파트 문화, 쌩쌩 달리는 자동차 문화 속에선 단절된 인간소외에 대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가난을 잊어버린 소유와 소비의 교만은 또 다른 좌절의 문화를 낳고 있는 것이다. 좁아터진 이 나라. 고속도로 교통체증처럼 앞뒤 좌우 살필 겨를 없이 숨막히게 살고 있다. 달리다 사고가 나면 울어줄 사람도, 돌봐줄 사람도 없다. 찾아가자!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까운 곳은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사람 살아가는 얼굴을 보아야겠다. 스쳐 지남이 아니라 속속들이 만날 수 있는 삶의 현장 속으로 가보아야겠다. 좁아터진 이 나라, 다시 가난함을 배워야겠다. 가난하면 나눌 줄 알고, 찾아갈 줄 알고, 행복해 할 수 있다. 겉멋 든 부자는 마음은 늘 불행하다. 함까 가자. 우리 이 길을. 가난의 현장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