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맞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475 | 작성일 : 2005년 2월 3일
모든 교사가 에니어그램 연수를 하던 2일째, 성격 유형별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각 조에서 한 명씩 나와 자기를 표현할 때마다 발표자의 성격이 자신의 유형을 정확히 대변한다고 모두들 합창한다. 검사결과 나의 유형은 지도자형인 8번이다. 나는 이 유형이 꼭 맞다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7번 낙천가 유형이지만 직책상 8번 유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어쨌든 나는 직선적이고, 말을 아끼지 않고, 마음에 새겨 침묵하지 않으며, 분노를 폭탄처럼 터트리며,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내 뜻을 이루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다. 그리고 밖에서 학교로 돌아올 때 주변의 정황이 맘에 맞지 않을 때는 참지 못하고 결국 시끄럽게 만들고 만다고 말을 했더니 모두들 ‘야, 맞다’라며 수군거리는 눈치였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자니 그런 행동이 공동체에 통합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분열을 가져온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머물고 싶고, 다니고 싶고, 행복한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나는 학생들의 대부와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들을 위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지 하였고 그것으로써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자부해왔다. 나는 대안학교를 설립 운영함으로서 교회 속에서 청소년들의 대부로, 교사로 살아간다는 칭찬을 받곤 했다. 더 나아가서는 19세기의 위대한 교육자 성 요한 보스꼬(1815-1888)를 닮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칭찬을 나보다는 함께 지내는 교사들(수녀를 포함하여)에게 돌리고 싶다. 나는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현장에서 자주 확인하였지만 참는 것보다는 화를 터트리는 것, 설득시키기보다는 위협하는 것,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보다는 오만함으로 체벌을 가할 때가 있었기에 이런 칭찬을 들으면 내속이 많이도 불편하여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요한 보스고 성인은 이렇게 살아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여러분이 주체 못하는 분노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벌을 줄 때 우리의 권위를 주장하거나 또한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리 권위 하에 있는 이들을 우리 자녀로서 바라보도록 합시다. 명령하러 오시지 않고 순종하러 오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지배한다는 그런 인상마저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지 맙시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대하신 방법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도들은 무지했고, 예의도 없으며 불충실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참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도 자비와 애정어린 지극한 친밀성으로 대하셨습니다. 그것을 본 어떤 이들은 놀라움이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겐 걸림돌이 되었지만 한편 다른 이들은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보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라고 권고해주셨습니다.”(성무일도 3권, p.1334)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자주 분노로 평화를 잃고 멸시의 눈초리로 마음이 상하는 일을 골라잡아 하며,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절조 없이 말을 함부로 하여 유익한 것을 주지 못했다는 깊은 반성을 해본다. 건강치 못한 분열된 8번 유형이 되었을 때 자리를 떠나든지 삶의 자세를 고쳐야 함을 깨닫는다. 훌륭한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8번 유형에다 좋은 날개를 달고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이루는 내 자신을 만들어가야겠다. 겸손과 항구심으로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청소년들의 대부와 스승으로 살았던 요한 보스꼬 성인을 본받아야겠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머물고 싶고, 다니고 싶고, 행복한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나는 학생들의 대부와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들을 위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지 하였고 그것으로써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자부해왔다. 나는 대안학교를 설립 운영함으로서 교회 속에서 청소년들의 대부로, 교사로 살아간다는 칭찬을 받곤 했다. 더 나아가서는 19세기의 위대한 교육자 성 요한 보스꼬(1815-1888)를 닮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칭찬을 나보다는 함께 지내는 교사들(수녀를 포함하여)에게 돌리고 싶다. 나는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현장에서 자주 확인하였지만 참는 것보다는 화를 터트리는 것, 설득시키기보다는 위협하는 것,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보다는 오만함으로 체벌을 가할 때가 있었기에 이런 칭찬을 들으면 내속이 많이도 불편하여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요한 보스고 성인은 이렇게 살아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여러분이 주체 못하는 분노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할 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벌을 줄 때 우리의 권위를 주장하거나 또한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행동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리 권위 하에 있는 이들을 우리 자녀로서 바라보도록 합시다. 명령하러 오시지 않고 순종하러 오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지배한다는 그런 인상마저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지 맙시다. 예수님이 사도들을 대하신 방법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도들은 무지했고, 예의도 없으며 불충실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참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도 자비와 애정어린 지극한 친밀성으로 대하셨습니다. 그것을 본 어떤 이들은 놀라움이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겐 걸림돌이 되었지만 한편 다른 이들은 그분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보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라고 권고해주셨습니다.”(성무일도 3권, p.1334)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자주 분노로 평화를 잃고 멸시의 눈초리로 마음이 상하는 일을 골라잡아 하며,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절조 없이 말을 함부로 하여 유익한 것을 주지 못했다는 깊은 반성을 해본다. 건강치 못한 분열된 8번 유형이 되었을 때 자리를 떠나든지 삶의 자세를 고쳐야 함을 깨닫는다. 훌륭한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8번 유형에다 좋은 날개를 달고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이루는 내 자신을 만들어가야겠다. 겸손과 항구심으로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청소년들의 대부와 스승으로 살았던 요한 보스꼬 성인을 본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