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어야하는데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113 | 작성일 : 2005년 10월 21일

좋은 것들과 관계를 맺고, 풍요로운 내용들을 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을하늘, 곱게 물든 단풍, 풍성한 열매들을 보면서 마음을 풍성하게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할 텐데 그런 것들이 잘 보이지 않나 보다. 한 선생님이 무단으로 밤 늦게 외출하여 학교로 돌아오는 학생을 만났다. “어디서 지내다 이제서 돌아오니?”라고 물었다. 한 학생은 “죄송합니다.” 라고 고개를 숙였지만, 다른 학생이 “잘라버릴 테면 잘라버리세요.”라고 오히려 된소리를 한다. 오히려 선생님이 겸연쩍다. 가정에서 늘 부모를 업신여기듯 여기서도 선생님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것들과 관계를 맺어 그 양과 질을 높여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기초가 부실해지면서 좋은 관계 대신 점점 하향식 관계를 맺으며 재미만 누린다. 만약에 어른들이 그러한 하향식 관계를 빼앗거나 못 하게 차단이라도 하면 그들의 모습은 감정을 제멋대로 표출하며 난동을 부리는 사나운  모습으로 돌변한다. 자기의 상황이 비참하기 때문에 자기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거부하고 반항하며 닥치는 대로 덤벼드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을 예찬하고 있을 때, 그들은 오히려 ‘청춘’을 두려워한다. 행복감을 주는 가을이 밉고, 사색할 수 있는 넓고 깊은 시간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단순히 어른들이 자신들의 비참함을 읽어주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재미를 훼방하는 방해꾼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냥 싫은 것이다.
 공자님은 君子三樂 중 하나로 “英才를 얻어 敎育시키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씀했는데 영재도 아니고 기초가 한 없이 부실한 젊은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결코 樂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통의 십자가 뒤에 부활이 옴을 믿는데 이들에게 부활은 언제 올까. 그들 스스로는 나쁜 것들로 재미를 보며 지내지만 사실 그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당한 미래의 시간이 지난 후면 그들에게도 분명히 부활은 오리라. “나 학교 안 다닐래요.” 하고 눈을 부릅뜨며 선생님들에게 엄포를 놓는 학생들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집에서는 그 동안 부모가 자녀의 반항에 늘 긴장하고 무던히 어르고 참아주었던 모양이다. 그런 습관들이 학교에서도 가방을 집어 던지며 똑같은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것일 게다. 철없이 하는 말이긴 하지만 모두 다 접었으면 좋겠다. 학창시절이 생각나서 이해심이 발동하는 것일까? 나도 저들 만했을 때는 저랬었지... 다 까먹은 지난 세월을 떠올리고 그들에게도 좋은 미래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철부지들 하고는, 언제 철들려는지...’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