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우는 닭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4,743 | 작성일 : 2004년 4월 28일

주일미사(오전10시)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鷄鳴이 들렸
다. 이 시간에 왜? 시계가 없던 시절, 시골에는 집집마다
닭이 있어 여지없이 黎明의 울음소리가 마을을 흔들어 깨웠
다. 당시의 닭 울음소리는 警鐘(알람 벨)이었다. 새벽을 깨
워 하루를 시작하도록 도왔기에 닭은 한몫을 했고 그런 닭
이 아무 때나 울면 고장난 시계 취급을 해서 제거하였다.
오늘날은 제각각 핸드폰과 자명종이 있어서 계명은 이제 여
명을 깨우는 경종이라기보다는 친근감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 곳은 기숙사 학교라서 외출주간인 토요일 밤부터 주일
날까지는 모두가 자유로와 한낮에도 아이들은 잠에 취한
다. 시도 때도 없이 애절하게 우는 鷄鳴은 늦게까지 자는
아이들을 깨우려는 애처로운 노력일까. 주일 복음은 "고기
잡이를 나갔으나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이
튿 날이 밝아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쳐 몰랐다. 예수께서 "얘
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
져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
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으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
큼 고기가 많이 걸려들었다."(요한 21.1-14)라는 말씀이었
다. "여명의 때에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라는 대목
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鷄鳴에 놀라 나도 모르게
잠시 멈춰섰다. 밤새껏 낚시하느라 허탕치고 있는 제자들에
게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마음을 흔들
어 깨우신다. 새벽을 깨우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했더니
제자들은 물고기를 엄청나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아직도
목적 없이 잠에 취한 학생들이 저 새벽닭의 울음소리처럼
쟁쟁하게 들려오는 에수님 말씀을 듣고 부활의 새벽을 맞이
했으면 하고 기도 해 본다. 언젠가 예수님은 베드로에
게 "새벽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라고 말씀해 주셨다. 베드로가 "나는
그를 모르오."라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을 때 새벽닭이 운
것을 상기한다. 주일날 미사에 참석한 몇몇 학생들에
게 "닭 울음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었다. 하나같이 "들었
다"고 답했다. "닭은 새벽에 운다. 그런데 저 닭은 아무 때
나 우는데 왜 그럴까"하고 질문했을 때, 한 아이가 나서
며 "아이들이 미사시간인데도 잠에 취해 있잖아요. 깨어나
라고 울지 않겠어요." 나는 그 학생에게 정확히 말해주었다
고 칭찬을 해 주었다.
 새벽은 참 좋은 시간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때묻지 않은
텅 빈 시간이다. 청정한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고, 강가에
물 안개를 보는 시간이다. 새벽이슬을 먹은 생명들이 잠에
서 깨어남을 보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누리라고 재촉하
며 새벽닭은 힘차게 울어대는 것이다. 아침형보다 저녁형
이 많은 우리 학생들에게 닭은 자기 소명인 듯 시도 때도
없이 울며 깨우고 있는 모양이다. 공동체가 충실한 삶으로
깨어나라고 닭이 자주 울고 있음이다. "안식일 다음 날 이
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 막달라 여자 마리아
가 무덤에 가 보니 무덤에 막아싸던 돌이 치워져 있었
다."(요한 20.1) 빈 무덤을 목격한 시간도 새벽이었다. 기
독교 신앙은 부활신앙이며, 부활체험의 가장 좋은 시간은
새벽이다. 좋은 시간 다 허비하고 헝클어진 마음으로 주일
을 바라보는 것은 부활을 놓쳐버리는 꼴이 된다. "애들아,
저 닭이 고장난 것이 아니라 혹시 너희가 고장나 있지는 않
니" 주일 날 黎明에 예수님이 너희 앞에 서 계시며 "뭘 좀
잡았느냐"고 물으신다.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그물을
다시 던져 보겠습니다."
 + 학교 소식
  * 청원군 한마음 축제.1등상 연극(이정원 외 7명),
    미술(현유리, 김재윤), 댄스(유광민 외 6명)
  * 1학기 중간고사 : 4.28-30
  * 춘계체육대회 : 5.7
  * 홈페이지 새롭게 단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