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만은....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601 | 작성일 : 2004년 11월 6일

일 처리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성인이거나 죽은 자,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또 다시 5명의 학생들이 귀교를 했다가 떠나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양업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왜 5명만은 학교에서 떠나 있는 것일까? 내 아들은 제외하고 다른 모든 학생들이 다 문제투성이라서 그런 것일까? 매년 일어나는 격랑처럼 금년에도 예외 없이 아이들 문제로 고통스런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11월 전체 학부모 회의를 기점으로 이제 골칫거리가 정리되나 싶었는데 또 다른 것이 불거져 학부모가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으니 많이 걱정된다. 학부모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당면한 문제를 심사숙고하여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피해버린다는 것이다. 학부형 중 한 분이 자기 자식이 입은 피해를 성토하며 모질게 학교를 비난하고 따졌다고 들었다. 이 말은 남의 잘못에 대한 단죄이고 자신의 부족한 면에 대한 반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며 결국 다른 사람의 하고자 하는 열성까지도 식게 만든다. 이런 식의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결과를 낳는다. 남을 모독할 정도로 강성을 보이는 학부형의 자녀는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화살의 진행방향은 상대로 향하다가 어느 순간 방향을 돌려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어느 순간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에 많은 사람이 놀란다. 자신에 대한 반성 없이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처사로 일관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그것을 지켜보며 피해자의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알아챈 주변의 건강한 동료들은 그 동안 참고 묻어두었던 피해자의 잘못을 하나하나 다 꺼낸다. 그 동안 누적되고 감추어졌던 피해학생의 죄는 건강한 학생들에 의해 샅샅이 드러난다. 자기의 죄가 크면서도 남의 허물만 묻고 솔직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해 동료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피해학생에 대한 동정심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솔직히 요즘 청소년들 중 많은 부분이 기초적인 윤리성이 부족하다. 부족한 아이들이 참 많다. 잘못을 할 때라도 여유를 갖고 함께 기다려주고 대화를 통해 그들이 후회하고 반성하며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안학교 양업의 몫이다. 부모는 ‘내 아이만 문제가 없다’고 상대에 대해 한 올의 남김도 없이 단죄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잘못할 때 엄하게 훈계를 해야 하지만, “애들아! 용기를 잃지 말고 앞으로 조심하게” 라는 말을 덧붙인다면 그들의 영혼은 일깨워지고, 다시 일어서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일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건강하다고 자처하는 학부형들이 자기 자식만 건강하고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은 다 문제가 있다며 자식을 빼내가는 것을 볼 때, 남겨진 텅 빈 자리에 동료학생들이 모여앉아 허탈해 하며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자녀의 내면을 정확히 읽지 못한 학부모의 성급함이 자녀가 더 이상 학교생활을 건강하게 하는 데에 어려운 상황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문제에 학부모가 깊이 개입하고 문제는 더욱 부정적으로 발전되어 얻은 것이라고는 상처밖에 없다. 왜 이리 어른들이 성숙하지 못한지... 한 피해학생은 가해자가 되어 결국 전학을 가는 책임을 지게 되었고, 폭력학생에게는 장기간의 귀가조치가 명해졌다.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는 어른들이 되지 못해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라고. “애들아! 용기를 낼 거지. 그리고 이번 일로 우리 또 한 번 도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