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받은 아이들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506 | 작성일 : 2004년 11월 16일

  입학철이 되면 학교가 부산하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더 큰 도시로, 그리고 해외로까지 뻗어나가는데 전국의 대도시 아이들은 수도 없이 이곳 대안교육현장으로 찾아든다. 산골짜기에 다람쥐밖에 없는데 왜들 촌구석으로 찾아오는지... 보고 나서는 하나같이 머물고 싶고, 다니고 싶은 학교라고 말한다. 속마음은 알 수 없는지라 냉정하게 고개를 저으며 도시의 일반학교를 다니라고 권유하지만 학부모와 학생은 이구동성으로 ‘좋은학교’라는 표현을 쓰며 양업에 입학을 허락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하는데 적어도 4차례 이상 입학전형위원들의 면접을 치러내야 한다. 과거에 대안학교 입학자들은 미시적인 성격으로 국한된 “중도탈락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미시적인 부분의 학생들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모르는 분들은 설립의지가 많이 변하고 퇴색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교회가 좋은 학교로서 정성을 다해 공을 들였고, 언론매체에서도 대안학교를 소개할 때 더 이상 중도탈락의 대안이라는 미시적인 부분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장으로서의 거시적인 부분으로 조명하고 있다. 일반학교의 틀에 박힌 0교시 수업, 야간 자율학습, 학원 등의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집중조명하며 현 교육에 대한 거시적인 돌파구로서의 대안으로 대안학교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대안학교는 지원 학생들로 연일 넘쳐나서 시끌벅적하다. 결과적으로 많은 학생들 속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온다.

  얼마 전 중학교 졸업예정자인 학교 전체 수석이 고입을 앞에 두고 공고를 선택했다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교육현장의 실업계는 성적 부진아들이 가는 학교로 인식되었었다. 그런데 전체 수석의 학생이 공고를 선택하겠다고 하자 담임은 특목고를 가라고 설득했지만 결국은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교육계를 흔드는 큰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다. 보통 우리는 모두가 안심하고 한 방향으로 움직이길 좋아한다. 그 대열에서 이탈하면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줄 안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학부모와 학생들은 일반학교의 교육방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교육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

  한 학생은 양업을 들어오려고 3년을 별렀다고 한다. 성적을 보니 최상위권이다. 담임선생님이 이 학교의 지원 소식에 놀라 “그 학교는 중도탈락 학생들이 가는 학교인데 자네가 문제아인가?”라며 만류할 때 그 학생은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누가 뭐래도 꼭 이 학교를 선택하겠습니다.” 라고... 어쩌면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당돌한 학생일는지도 모른다. “0교시, 자율학습이 싫습니다. 마음껏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싶습니다. 획일적으로 통제된, 질식할 것 같은 고정화된 그런 곳에선 살기 싫습니다.” 이제는 부모들도 거든다. “우리도 지내온 세월을 생각했습니다. 저도 제 자녀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속에서 40명이라는 제한된 입학 인원만을 선발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 아이들은 입버릇처럼 주도성, 자율성이란 용어를 잘도 끄집어내고 있는데 과연 선택에 책임을 질 아이들인지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면도 있다. 성숙한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단어들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 학교의 학생들은 멍청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당당해진다. 미래를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점점 주도적이고 자발적이 된다. 산골짜기에 살아갈 지원자가 결정되고 새살림 준비하기에 더욱 분주해졌다. 이들은 특혜 받은 아이들임에 분명하다.